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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대전 발바리 이중구 연쇄 강간 사건

by hwani’s 2023. 12. 11.

목차

    대전 발바리 이중구 연쇄 강간 사건

    목차
    1. 사건개요
    2. 사건내용
    3. 범행수법

    사건개요

    이중구 사건은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대전을 중심으로 발생한 연쇄 강간 사건으로, 피의자는 이중구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중구가 성폭행한 것으로 확인된 피해자는 총 184명에 이르렀지만, 법정에서는 77건의 강간과 강도, 절도 등의 죄목만이 인정되어 피해자 수는 127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러한 연쇄 강간 사건은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손쉬운 상습 범죄로, 모방성이 강하며 피해자들이 사건을 숨기고 싶어하는 경향 때문에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게 됩니다.

    사건내용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대전광역시에서 발생한 이중구 연쇄 강간 사건은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폭력 사건 중 하나입니다. 이중구는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은 원룸촌을 노리며 약 7년 동안 수많은 성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경찰은 1999년부터 피해자들의 체액을 채취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며 유전자 감식을 통해 수십 건의 사건의 범인이 동일인물임을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이중구의 몸놀림이 날렵하고 증거를 남기지 않는 치밀한 범행 방식 때문에 그를 검거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2004년 10월, 대전동부경찰서 형사계장으로 부임한 유동하 계장은 이 미제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1월 10일, 중리동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의 범인으로 이중구가 지목되면서 사건의 전환점이 왔습니다.

    이후 2005년 4월에는 용문동에서 3명의 여성이 한 번에 성폭행 당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 사건에서도 이중구의 유전자가 확인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에 포착되어 사회적인 관심을 끌었고, 이후에도 이중구의 유전자가 여러 강간 사건에서 계속해서 발견되었습니다.

    사건 분석 결과, 이중구는 2003년 6월까지 대전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그해 7월부터는 청주로 영역을 옮겨 성폭행을 저질렀습니다. 2004년부터는 범행 영역을 전국으로 확대하였고, 이중구의 유전자는 전주, 용인, 대구 등 전국의 성폭행 사건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동부서 형사들은 이를 분석하면서 유전자 확인이 되지 않은 다른 사건들에도 주목하였습니다. 피해자들의 공통된 진술인 '범인의 키가 작다'는 점을 토대로 키가 170cm 이상인 사람을 용의선상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실제로 이중구는 키가 157cm로 왜소한 체격이었습니다.

    또한, 이중구는 집 안에 있던 수건을 칼이나 가위로 잘라서 피해 여성의 손가락을 묶는 특이한 수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수사팀은 2004년 1월 4일 광주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에 주목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유전자 검출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중구의 특이한 범행 수법이 동일하였습니다.

    이후, 경찰은 2004년 광주 사건과 2005년 논산 사건의 현장 CCTV를 분석하여 한 대의 차량을 두 현장 모두에서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차량의 주인이 피의자인지는 유전자 대조 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중구의 주거지를 찾아간 형사들은 이중구가 집 안에서 나오지 않고 창문으로 도망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경찰은 이중구가 범인일 가능성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수사팀은 이중구의 주거지를 급습하여 이중구의 대학생 아들이 피우다 만 담배꽁초를 확보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수집된 유전자와 이전에 확보되었던 '이중구'의 유전자를 감식하여 대조하였고, 결과는 일치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이중구가 범인임이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대전 동부경찰서에서 본격적으로 재수사에 들어간 지 약 1년 후인 2006년 1월 10일의 일이었습니다.

    이중구는 자신이 수사의 대상이 된 것을 감지하고, 신속하게 도주를 시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논산의 처가집으로 향했다가 청주로 이동한 후 다시 서울로 이동하였습니다.

    그의 검거는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었고, 대전 동부경찰서는 이중구의 얼굴 사진과 옷차림, 현상금 500만 원 내역 등이 담긴 수배 전단을 제작하여 전국의 경찰관서에 배포하였습니다.

    2006년 1월 18일, 이중구가 서울에서 대전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경찰은 이를 통해 이중구의 소재를 파악하였고, 그를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PC방에서 급습하여 검거하였습니다.

    검거 당시 이중구는 흰색 야구모자와 푸른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상의는 밤색 무스탕, 하의는 군청색 트레이닝복, 흰색 운동화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중구는 검거 시 순간적으로 저항하였지만, 곧바로 항복하였고 "마음이 후련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중구는 대전동부경찰서로 압송된 후에는 "잘못했습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유치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전국을 돌며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연관성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이 검거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였다고 합니다.

    범행수법

    이중구는 1998년 2월 7일, 택시기사로 일하던 중 술에 취한 여성 승객을 뒤따라가 강간하는 등의 범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피해 여성이 자신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한 것이 범행의 동기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범행은 계속되었고, 그는 여성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왕이 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의 범행 대상은 택시 승객, 원룸촌에 홀로 거주하는 여성, 유흥업소 종업원 등 다양했고, 나중에는 가정주부, 회사원, 영업사원, 무직자, 임산부 등도 포함하였습니다.

    이중구는 침입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화장실 창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가스 배관을 타거나, 출입문이 닫혀 있을 때는 가스 검침원, 우유배달원, 보일러 수리공 등으로 위장하여 피해자들을 속였습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범인에게 심한 냄새가 났다고 증언한 것은, 그가 축구를 마친 직후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중구는 피해자의 부탁으로 돈을 가지고 현장에 나타난 다른 여성까지 성폭행하였습니다. 이는 피해를 당하지 않은 여성이 그를 신고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강도 강간범의 수법입니다.

    그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 여성들도 범행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새벽에 가정집에 몰래 들어가 가족에게 망신을 주겠다는 위협으로 피해 여성을 위협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피해자의 남자친구를 묶어놓고 그 앞에서 성폭행을 저지르기도 하였으며, 한 번 성폭행한 여성을 3개월만에 다시 찾아가 성폭행하였습니다. 그는 피해 여성들에게 "경찰은 죽었다 깨어나도 나를 못잡을 것이다"라며 경찰을 조롱하였습니다.

    그는 피해자들의 신고를 지연시키기 위해 휴대폰을 감추거나, 유전자 검사를 피하기 위해 피해여성을 강제로 목욕시키는 등의 수법을 사용하여 경찰의 추적을 피하였습니다.

    그는 경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범행의 무대를 대전과 충북 청주에서 전북 전주, 경기도 등으로 넓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몇 차례 범죄를 저질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범행일지를 치밀하게 기록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과는 대조적입니다.

    사형이 구형되었지만,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이중구는 2026년에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범죄는 성범죄에 해당하며, 중범죄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실제로 가석방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법무부의 현재 방침은 원칙적으로 성범죄자에 대한 가석방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가석방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