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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대한민국 연쇄강간, 살인, 사형수 강호순 사건 정리

by hwani’s 2023. 12. 6.

목차

    대한민국 연쇄강간, 살인, 사형수 강호순 사건 정리

    목차
    1. 사건개요
    2. 사건내용
    3. 범행 요약
    4. 판결

    사건개요

    강호순은 대한민국의 연쇄 강간범, 연쇄 살인범, 사형수로서, 그의 출생년도는 1969년 10월 10일이지만, 출생신고가 늦어져 주민등록상으로는 1970년 3월 1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이며, 경기 서남부 지역, 강원도 정선군, 경기도 안산시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죽인 여성 중 확인된 피해자 수는 총 10명입니다.

    또한 강호순은 한 때 화성 연쇄 살인 사건과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았습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경기도 남부 지역에서 주로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연쇄 실종 및 살인이 일어났던 사건으로, 이 사건이 벌어질 당시 강호순은 충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범인이 강호순이라는 주장은 그가 붙잡힌 후에 나온 억측이며, 후에 진범 이춘재가 발견되면서 강호순의 범행이 아니었다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2004년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은 강호순의 활동 시기와 겹치며, 정황상으로는 그의 범행일 가능성이 있지만, 물증이 없어 가설에 그쳤습니다.

    강호순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그것이 알고싶다' 705회 (2009년 2월 21일 방송)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사건내용

    2004년부터 경기도 남부 지역에서 여성들이 연속적으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비록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같은 지역에서 실종 사건이 반복되어 '연쇄 실종'으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군포에서 일어난 여대생 실종 사건은 강호순이 피해자를 살해한 뒤, 피해자의 카드로 돈을 인출하려다가 덜미를 잡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과 모친의 차량을 불태워 의심을 더욱 커지게 했습니다.

    강호순이 처음 붙잡혔을 때는 얼굴을 가리며 신원공개를 거부했으나, 여론의 반발로 인해 얼마 후에 신상이 공개되었습니다. 그는 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법률 제정의 계기가 된 범죄자입니다.

    경찰에 붙잡히고도 "증거를 가져와라."라며 항변했지만, CCTV에 찍힌 그의 얼굴과 피해자에서 발견된 DNA가 일치함으로써 그의 범행이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평상시에는 상당히 순진하고 순박한 모습이었으며, 그로 인해 여성들을 쉽게 속였습니다. 강호순의 여성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여성을 꼬드기는 것을 즐겼고, 이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네 번째 아내와 동거하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으며, 사람을 잘 꼬드기는 행동은 사이코패스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05년, 강호순은 네 번째 아내와 장모를 방화로 살해하여 약 4억 원에 달하는 생명보험금을 타락시켰습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유흥업소와 정신과를 다니며 전국을 방황하였고, 이러한 생활 중 강원도에서 군청 직원을 강간 살해한 사건으로 그의 범행이 시작되었습니다.

    2006년 9월에는 강원도에서 실종된 정선군청 여직원 윤모 씨(당시 23세)의 실종 사건이 강호순의 추가 범행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 강호순의 첫 번째 희생자로 기록되었습니다.

    강호순은 개 농장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에게 친화적인 이미지를 갖게 하기 위해 개와 함께 찍은 사진을 이용했으며, 사실은 사진을 찍은 직후 개를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추운 겨울에 먹이를 주지 않고 농장에서 키우던 수십 마리의 시베리안 허스키를 동사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며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는 1세대 구형 에쿠스와 무쏘를 타고 희생자를 찾아다녔습니다. 그의 교활한 점은 희생자들의 눈에 잘 띄는 차량 앞좌석에 '개와 찍은 사진' 등을 놓아 그들을 안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연쇄 살인범 게리 리지웨이의 수법과 비슷한데, 이는 두 사람이 모두 전형적인 성적 연쇄살인범이기 때문입니다.

    강호순은 주로 추운 겨울에 버스가 잘 오지 않는 정류장에 홀로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차를 태워줄 것을 제안하며 여성들을 유인하였습니다. 그는 여성들을 강간한 후 목을 졸라 살해하고 암매장했습니다. 이때 희생자의 손톱을 가위로 잘라 자신의 혈흔을 남기지 않았고, 범행에 사용된 차량을 소각하는 등의 치밀한 범행을 보였습니다.

    강호순의 신상이 공개되자 "내 얼굴 공개됐는데 자식들은 어쩌라고?"라며 항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는 자식들의 교육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너희들이 알아서 사 먹어라'라는 식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실제로 그의 아들이 2007년에 가출 후 절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그의 부모로서의 무관심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인터뷰에서 그가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강호순의 행동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행동 양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 중에는 그를 소시오패스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의 항의와 달리 실제로 그가 가족을 걱정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호순의 희생자는 최소 8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실제로는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곡괭이에서 발견된 두 명의 DNA는 밝혀진 피해자들이나 당시의 실종자들의 DNA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강호순의 범행 사실을 최대한 숨기려고 노력하던 특성 때문에, 이 DNA는 또 다른 피해자의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실종자들의 DNA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DNA와의 대조 실패했고, 그 결과 그의 추가적인 범행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범행요약

    • 2006년 9월 7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에서 출근하던 군청 여직원 윤모 씨(23세)를 차량으로 유인하여 납치, 성폭행 후 살해. 시신은 강원도 정선군의 야산에 암매장했습니다.
    • 2006년 12월 14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서 노래방도우미 배모 씨(45세)를 살해. 차 안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 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의 야산에 암매장했습니다.
    • 2006년 12월 24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화서동에서 노래방 도우미 박모 씨(36세) 살해. 차 안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안산시 상록구 사시동에 위치한 야산에 암매장했습니다.
    • 2007년 1월 3일: 경기도 화성시 신남동 버스정류장에서 회사원 박모 씨(50세) 살해. 차량으로 유인 후 납치, 성폭행, 살해한 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삼화리에 위치한 야산에 암매장했습니다.
    • 2007년 1월 6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에서 노래방도우미 김모 씨(39세) 살해. 차량으로 유인 후 납치, 성폭행, 살해한 뒤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고모리 공터에 암매장했습니다.
    • 2007년 1월 6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에서 노래방도우미 김모 씨(39세) 살해. 차량으로 유인 후 납치, 성폭행, 살해한 뒤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고모리 공터에 암매장했습니다.
    • 2008년 11월 9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 정류장에서 주부 김모 씨(48세) 살해. 시신의 손가락을 자른 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습니다.
    • 2008년 12월 19일: 경기도 군포시 보건소 앞에서 여대생 안모 씨(21세) 살해. 시신의 손가락을 자른 뒤 화성시 매송면 원리에 위치한 논두렁에 암매장했습니다.

    판결

    강호순은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수원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2009년 4월 9일에 검찰은 강호순에 대해 사형을 구형하였고, 이에 대해 4월 22일에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1심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강호순은 이 판결에 불복하여 변호인과의 상의 없이 직접 항소장을 작성하여 항소하였습니다. 그러나 2009년 7월 23일에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항소심에서도 사형이 다시 한 번 선고되었습니다.

    강호순은 자신의 최후진술에서 사형 선고가 부합하다는 인식을 표현하였고, 이에 따라 상고를 포기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2009년 7월 31일에 강호순에 대한 사형이 확정되었고, 그는 현재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사형수로서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