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로베르토 바조: 이탈리아 축구의 전설과 그의 마법 같은 플레이 스타일
목차
1. 프로필
2. 생애 및 유년 시절
3. 프로 시절
4. 클럽 경력
5. 국가대표 경력
6. 평가 및 플레이 스타일
7. 수상 내역
8. 이적료 및 연봉
프로필
- 이름: 로베르토 바조 (Roberto Baggio)
- 출생일: 1967년 2월 18일
- 출생지: 이탈리아 칼도뇨
-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세컨드 스트라이커
- 신장: 174cm
생애 및 유년 시절
로베르토 바조는 1967년 2월 18일 이탈리아 칼도뇨에서 태어났다. 8남매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큰 열정을 보였다. 그의 뛰어난 재능은 동네 축구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는 곧 지역 클럽의 눈에 띄어 유소년 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바조는 그의 고향 팀인 칼도뇨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곧 이탈리아의 주요 클럽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프로 시절
바조의 프로 경력은 1982년 비첸자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비첸자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피오렌티나로 이적하였고, 이후 유벤투스, AC 밀란, 인테르 밀란 등 이탈리아의 최고 클럽들을 거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그의 기술적 능력과 창의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많은 축구 팬들과 전문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클럽 경력
비첸자 (1982년~1985년)
바조는 15세에 비첸자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그는 비첸자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빠르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은 곧 피오렌티나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1985년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게 되었다.
피오렌티나 (1985년~1990년)
피오렌티나에서 바조는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피오렌티나에서 94경기 출전, 39골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그의 뛰어난 기술과 창의적인 플레이는 피오렌티나를 이탈리아 축구의 강호로 이끄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유벤투스 (1990년~1995년)
1990년, 바조는 당시 세계 최고 이적료인 800억 리라에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유벤투스에서 그는 200회 이상의 경기에 출전해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특히 1993년 UEFA컵 우승과 1995년 세리에 A 우승은 그의 커리어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그는 유벤투스에서 141경기 출전, 78골을 기록했다.
AC 밀란 (1995년~1997년)
바조는 1995년 AC 밀란으로 이적하며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AC 밀란에서 그는 두 시즌 동안 51경기 출전, 12골을 기록하며 팀의 세리에 A 우승을 도왔다.
볼로냐 (1997년~1998년)
볼로냐에서 바조는 그의 커리어 중 가장 인상적인 시즌 중 하나를 보냈다. 그는 33경기 출전, 22골을 기록하며 팀의 중위권 도약에 큰 기여를 했다. 그의 활약은 다시 이탈리아 대표팀에 소집되는 계기가 되었다.
인테르 밀란 (1998년~2000년)
바조는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해 또 다른 도전을 이어갔다. 인테르 밀란에서 그는 41경기 출전, 9골을 기록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브레시아 (2000년~2004년)
바조는 그의 커리어 마지막을 브레시아에서 보냈다. 그는 브레시아에서 95경기 출전, 45골을 기록하며 팀의 중위권 도약을 이끌었다. 그의 뛰어난 활약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는 2004년 은퇴를 선언했다.
국가대표 경력
바조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88년 유로 대회를 통해 국제 무대에 데뷔했으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팀의 3위에 기여했다. 그의 국제 대회 경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1994년 미국 월드컵이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바조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그의 뛰어난 경기력과 결정적인 골들은 이탈리아를 결승에 올려놓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하며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 순간은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국가대표팀 기록
바조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56경기 출전, 27골을 기록했다. 그의 국가대표 경력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그는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평가 및 플레이 스타일
평가
로베르토 바조는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뛰어난 기술, 창의적인 플레이, 그리고 경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능력은 많은 축구 팬들과 전문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특히 중요한 경기에서 팀을 위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플레이 스타일
바조의 플레이 스타일은 매우 창의적이고 기술적이었다. 그는 공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고, 양발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정확한 패스를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의 주된 역할은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서 팀의 공격을 조직하고,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바조는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를 효과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었다. 또한, 그는 프리킥 상황에서도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중요한 순간마다 팀을 위한 골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였다.
수상 내역
클럽
- 세리에 A 우승: 1994-95 (유벤투스), 1995-96 (AC 밀란)
-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94-95 (유벤투스)
- UEFA 컵 우승: 1992-93 (유벤투스)
개인
- 발롱도르: 1993
- FIFA 올해의 선수: 1993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1993, 1994
- FIFA 월드컵 실버볼: 1994
- FIFA 월드컵 브론즈슈: 1994
- FIFA 100: 2004 (펠레 선정)
국가대표
- FIFA 월드컵 준우승: 1994
- FIFA 월드컵 3위: 1990
이적료 및 연봉
이적료
바조의 이적료는 그의 커리어 동안 여러 차례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1990년 피오렌티나에서 유벤투스로의 이적은 당시 세계 최고 이적료인 800억 리라(약 13백만 유로)로 기록되었다. 그의 이적료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이탈리아 축구 이적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봉
바조의 연봉은 그의 커리어 동안 꾸준히 높았다. 특히 유벤투스, AC 밀란, 인테르 밀란 등 주요 클럽에서 그의 연봉은 매우 높았으며, 이는 그의 뛰어난 기량과 팀에 대한 기여도를 반영한 것이다. 구체적인 연봉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당시 기준으로 상위권 연봉을 받는 선수 중 하나였다.
로베르토 바조는 그의 뛰어난 기술과 창의성으로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의 경력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경기를 보는 것은 축구의 예술을 감상하는 것과 같았다. 바조는 단순한 축구 선수를 넘어,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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