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부산 사상구 엄궁동 갈대밭 2인조 살인 사건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상세
사건 개요
1990년 1월 4일 부산광역시 사상구 엄궁동의 갈대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당시에 범인을 체포하여 대법원까지 유죄선고를 하여 해결된 사건이라고 여겨졌으나, 2016년 7월 1일 일요신문 문상현 기자를 통해 과거 수사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해 누명을 씌우고 조작한 의혹이 처음으로 제기되었고 같은해 10월 1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더욱 구체적인 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화제가 됐다. 이후 2019년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사실이 밝혀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에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바 있다.
사건 상세
1990년 1월 4일 새벽 1시 30분께 부산 사하구 신평동 인근에서 한 남녀가 차를 주차해 놓은 후 여성은 차에서 내리고 남성은 뒷좌석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괴한 2명이 강제로 차 문을 열고 피해 남성의 얼굴을 돌로 계속 가격. 그때 여성이 돌아오고 괴한은 "남성을 살리려면 차에 타라" 라고 말했다. 차는 엄궁동으로 향했고, 괴한들은 피해 남성의 손을 뒤로 묶고 입을 막은 후 피해 남성을 죽이기 위해 낙동강에 밀어 넣었다. 피해 남성은 겨우 테이프를 풀고 물속에서 나와 괴한과 격투를 벌이다가 괴한이 방심한 사이 여성에게 도망치라는 소리를 지른 후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도망쳐 근처 공장에 숨어있다가 공장 직원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 후 강변도로 앞 낙동강변 엄궁동 555번지 갈대숲에서 피해 여성의 시신이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는데, 두개골이 분쇄골절 되었으며 뇌 일부를 도구 없이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손상된 상태. 피해 여성은 인근 지역에 살던 박씨로, 박씨는 사건 바로 전날까지 한 무역회사에서 근무했다. 현장에서는 박씨의 시신 외에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그 어떤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박씨의 직장동료는 밤이 어두워 범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남성이 기억하는 유일한 사실은 범인 중 한 명은 키가 컸고 다른 한 명은 키가 작았다는 정도. 범인의 특징은 그 시기 낙동강변에서 잇따라 발생한 여러 건의 강도 상해 사건들의 범인들과 매우 흡사했다. 사람들은 일련의 사건을 가리켜 일명 '엄궁동 2인조 사건'이라 불렀다. 엄궁동 2인조는 현장마다 지문 하나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수사는 지체됐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 30여m 떨어진 부분에서 체액이 묻은 손수건이 발견 되었는데, 초기 검사 혈액형은 A형 이었으나 재검사후 AB형 이었고, 2인조 혈액형은 각각 AB형, O형 이었다. 피해자 남성 차량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으로 확인한 결과 피해자들의 혈액형은 남성 A형, 여성 B형이었다.
그런데 사건 발생 2년 후 용의자들이 검거됐다. 당시 경찰 발표에 따르면 체포된 두 사람은 낙동강 주변에서 경찰을 사칭하며 돈을 갈취하고 다녔던 전력이 있었다. 당시 을숙도는 차량 통제 지역이었으나, 연인들이 은밀한 데이트를 위해 차를 몰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고, 이들을 대상으로 경찰인척 위협하다가, 봐 줄테니 돈을 달라 하여 돈을 받고 내보내는 형식이었다. 게다가 한 명은 키가 컸고 다른 한 명은 키가 작았다. 당사자 최씨 말로는 당시 청년 봉사단원이었고 자연보호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을숙도에서 차를 끌고 온 사람들에게 나가라고 했더니 30,000원을 자신에게 주었고 얼떨결에 그 돈을 받았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고 한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이들이 범인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10여 차례가 넘는 조사 과정에서 이들은 진술을 끊임없이 번복했다. 그리고 특정 시점부터 두 사람의 진술이 정리된 정황이 발견됐다. 최종 수사 결과 검거된 두 사람 중 체격이 큰 최씨가 각목으로 피해자를 구타한 후 키가 작은 장씨가 돌을 이용해 살해한 것으로 정리. 두 사람은 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21년 후 두 사람은 감형을 받고 출소했다. 하지만 이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당시 두 사람의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변호사는 장씨가 강력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강조. 장씨의 시력이 장애에 가까울 정도로 나빴다는 사실은 최씨도 알고 있었다. 시력판의 가장 윗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시력. 그럼에도 최씨는 당시 장씨를 공범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최씨가 형사들로부터 혐의를 인정하면 가혹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속임수, 일명 '공사'에 넘어갔다는 것. 현재는 과학수사가 발달하여 DNA 검사나 CCTV 확인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범인을 검거할수 있지만 당시에는 과학수사라는 개념이 생소했다. 그래서 용의선상에 올라와있는 용의자로부터 자백을 받는 것이 강력한 증거였는데 자백을 받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강압수사가 종종 일어났다. 박준영 변호사가 그 당시 사관 관련 신문기사 3년치를 찾아보니 고문과 가혹행위와 관련된 기사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 기사들 중 엄궁동 피해자들이 수사를 받았던 사하 경찰서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비슷한 고문을 당했다는 기사도 발견했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사건, 미제사건의 범인을 검거한 경찰에게 특진을 시켜주는 제도가 있었고 특진에 눈이 먼 경찰이 증거를 조작해 억울한 희생자를 만든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사건사고 > 우리나라 미제 사건 사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형호 유괴 살인사건 – 영화 그놈목소리 (0) | 2022.08.01 |
---|---|
대구 팔공산 팔공CC 캐디 토막살인 사건 (0) | 2022.07.29 |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 (김현정양 배준일군) (0) | 2022.07.15 |
서귀포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영구 미제 사건) (0) | 2022.07.07 |
자기집에서 피살 당한 부부 - 인천 부평구 십정동 부부 살해사건 (0) | 2022.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