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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사고/미스터리 사건

우랄 산맥 홀라트샤흘산 디아틀로프 탐사대의 죽음 사건

by hwani’s 2023. 1. 17.

목차

    우랄 산맥 홀라트샤흘산 디아틀로프 탐사대의 죽음 사건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전개
         2-1. 알려진 의문점
         2-2. 의문점에 대한 반박

    사건 개요

    디아틀로프 탐사대의 죽음 사건은 1959년 2월, 소련의 우랄 산맥 홀라트샤흘산에서 발생한 원인 불명의 사망 사건으로, 총원 10명의 탐사대 가운데 질병으로 인해 산행에서 빠진 1명을 제외한 9명이 전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건은 2월 1일에서 2일 사이의 밤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9구의 시신 가운데 5구는 겁에 질린 표정과 속옷 바람으로 발견되었으며, 4구 중 1구는 물리적인 충격으로 두개골이 골절되었고 2구는 가슴뼈가 골절되었다. 또한 한 명은 혀가 반듯하게 잘려 있었다. 이 밖에도 시신의 옷에서는 방사능이 검출되었고 주변 나무들은 불에 타 있는 등 사망 원인과 시신의 특이점 등에서 여러가지 의문점이 많아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았다.

     

    2020년 7월 러시아 검찰 당국은 최종적으로 눈사태에 의한 사망이었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세간에서는 아직까지 이를 둘러싼 해석과 음모론 등이 분분하다.

    사건 전개

    1959년 1월 28일, 이고르 댜틀로프를 위시한 탐사대원 10명이 러시아 우랄 산맥을 거쳐 오토르덴산을 등반하고 2월 12일 베이스 캠프 '비즈하이 마을'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등반 당일에 유리 유딘이 열과 두통 증세를 보여 탐사대에서 이탈하고, 나머지 9명이 등반에 나섰다.

     

    출발하고 5일차가 되는 2월 1일, 산에 폭설이 몰아치자 남아있던 유딘이 걱정되는 마음에 탐사대에 무전을 보냈는데, 곧바로 탐사대장 이고르 댜틀로프가 "우리들은 임시 캠프를 치고 휴식 중이며 무사하다"라는 답신을 보냈다. 그러나 그 다음 날부터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었으며, 결국 하산날짜인 2월 12일에도 일행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수색대를 파견해서 실종자 수색을 하였다. 2월 26일, 임시캠프로 추정된 장소로부터 1.5 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일행의 시신 5구를 발견하였다. 악천후 때문에 봄이 될 때까지 조사를 미루다가 재개하였다. 5월 4일에는 조금 더 먼 인근 계곡에서 시신 4구를 발견하여 실종자 전원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당시 소련 정부는 조난사고라고 발표했지만, 사건정황에 여러 가지 의문이 많아 이런저런 추측들이 나왔다. 하지만 결국 원인을 모르는 미해결사건으로 남았다.

    알려진 의문점

    발견된 시체들은 사망 정황에 여러 가지 의문이 있었다. 옷에서는 방사능이 강하게 검출됐고 전나무도 불에 타있었다. 먼저 발견된 대원 5명은 그 강추위 속에서도 속옷만 입고 하나 같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동사했다. 또한 나중에 발견된 4명은 먼저 발견된 5명의 옷가지를 섞어 입었고 그 중 한 명은 자동차 사고에 맞먹는 물리적인 충격을 받아 두개골이, 두 명은 가슴뼈가 골절되었다. 거기다 모두들 오렌지색으로 피부가 착색되어 있었고 이들 중 2명의 옷에선 방사능 수치가 일정 수준 이상 검출되었다고 한다.

     

    소련 정부는 이 사건의 수사기록 원본 일부를 고의로 훼손하고 나머지는 철저히 비밀리에 보관했으며, 복사본들은 전부 다 처리했다고 한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경찰 간부 레이 이바노는 이 사건이 도저히 합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며 UFO의 짓일지도 모른다고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2009년 사건 50주기를 맞이하여 동료 9명의 무덤을 찾아온 유일한 생존자 유리 유딘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신에게 질문할 기회가 단 한번이라도 주어진다면, "그날 밤에 도대체 내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라는 것을 꼭 묻고 싶습니다.

    그러던 2013년 4월 27일, 유리 유딘은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의문점에 대한 반박

    영하의 날씨에 대원들이 옷을 벗고 죽어있는것은 극심한 저체온증으로 인한 이상탈의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의학적으로 원인은 분분하나 뇌가 한계가 달했을때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설과 갑자기 근육속에 있던 따듯한 혈액 때문에 추위에 얼어있던 몸이 뜨거움을 느껴 발광한다는 설이 있다.

     

    루드밀라의 시신에서 혀가 칼로 자른듯 잘려져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3개월이 지난 뒤 발견된 루드밀라의 시신은 눈 아래 3 m에서 발견되었으며 미라화가 굉장히 진행된 상태였다. 당연히 눈, 혀 등 썩기 쉬운 부분은 모두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특히 계곡의 시신들은 거의 석 달이나 지난 5월 4일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부패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루드밀라의 시신들만 강조되었으나 실제로는 다른 시신들에서도 혀가 썩는 등 손상이 심했다.

     

    자동차에 치인 듯한 충격 또한 실제로는 심한 타박으로 인한 골절로 두개골 손상이 가능하다. 즉, 계곡에서 발견된 시신들의 물리적인 상처는 계곡에서 추락하였고, 이후 3개월 가량 악천후로 쌓인 눈의 무게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또한 시신의 피부가 착색되는 것은 무슨 특이한 현상이 아닌 사후에 시신에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이고, 방사선 수치가 높게 검출되었다 운운도 무책임한 황색 저널리즘의 결과이다. 당시 소련과 세계 여러 곳에서 핵무기 실험을 하여 방사능이 낙진되었기 때문에, 방사능 소량이 널리 퍼진 것은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옷에서 방사능이 검출된 시신은 단 2구였는데, 두 사람 다 방사능 물질과 관련된 곳의 직원이었기 때문에 옷에서 방사능이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이유도 없으며 그것도 알려진것과 달리 엄청나게 강한 정도가 아닌 다소 높은 수치였다. 탐사대원들의 머리가 백발화했다는 내용도 떠도는데 사실이 아니다. 검시관의 보고서엔 그들의 머리가 모두 자연 색상 그대로라고 기록되었다.

     

    소련 정부 또한 실제로는 이 사건의 파일을 기밀로 분류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당시 소련 정부는 해당 사건 현장을 아마추어 스키 그룹에 한해서만 출입을 금지했는데, 동일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는 안전책일 뿐이었으며, 3년 뒤에는 해제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