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잉글랜드 & 맨유의 최고 미드필더 & 프리키커 '데이비드 베컴'
목차
1. 프로필
2. 플레이 스타일
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 레알마드리드CF
5. LA갤럭시 / AC밀란
6. 파리생제르맹FC
7. 은퇴
프로필
데이비드 베컴은 잉글랜드 축구의 윙어 포지션에서 활약했습니다. 그의 오른발 킥력은 정확성과 파워를 동시에 갖추고 있어, 이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뛰어난 축구 실력과 매력적인 외모로 인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걸그룹 스파이스걸스의 멤버인 빅토리아 베컴과 결혼하여 주목 받았습니다.
그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주장으로 활약하며 핵심 선수로서 오랫동안 기여하였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1998-99 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하는 등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갈락티코스 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명성을 한층 더 올렸고, 200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 MLS 리그에서 활동하며 붐을 조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플레이 스타일
베컴은 넓은 시야와 정확한 킥을 바탕으로 패스를 보급하며, 그는 오른쪽 윙어로서 크로스를, 중앙 미드필더로서는 다양한 위치에 롱 패스를 보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비록 그의 주력과 민첩성, 수비 스킬이나 공격에서의 테크닉은 동시대 선수들과 비교해 특출나지 않지만 평균 이상의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이미지와 외모, 킥력 등 스타 선수의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반면 굉장히 많이 움직이며 경기하는 하드워커였습니다.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 최종전 대 그리스전에서는 동료들이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일 때 16.1km를 달려가며 코너킥 어시스트와 극적인 프리킥 골로 2-2 무승부를 만들어냈습니다.
베컴은 넓은 활동 범위를 바탕으로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하였으며, 오른쪽 미드필더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풀백으로도 출전하였습니다. 또한,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는 중앙 및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활동하였습니다. 그의 프리킥은 상징적인 것으로 비스듬한 위치에서 발사된 공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베컴만의 클래식한 장면입니다. 역대 최고의 데드볼 스페셜리스트 중 한 명으로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지니우 등과 함께 언급됩니다. 베컴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수비 선수를 앞에 두고도 여유롭게 롱 패스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롱킥을 할 때는 발목 힘을 이용하여 양팔을 아래 위로 휘두르며 밸런스를 잡는 독특한 폼이 그만의 특징입니다.
베컴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빠른 슈팅 10위 이내 기록을 2개나 보유하고 있으며, 1997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첼시 경기에서는 157.5 km/h 슈팅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활동량은 엄청나게 높아 전성기 맨유 시절에는 리그 경기당 평균 뛴 거리가 14km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주로 윙어로 활동했던 맨유 시절과 달리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하였고, 이 때문에 그의 킥 스루 패스 스타일보다는 경기장을 휘젓는 엄청난 활동량이 부각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 해 라리가에서 가장 많이 움직인 선수로 기록되었습니다.
AC 밀란에서는 안첼로티 감독 아래에서 주 포지션인 윙어에 가까운 플레이를 하였지만, 레오나르도 감독 아래에서는 전술적 이유로 윙어로 출장하였습니다.
그의 단점은 속도가 일반적인 윙어보다 느린 것과 온더볼 기술이 특출나게 뛰어난 수준은 아니라는 점으로 인해 전술적 제약을 받았습니다. 4-3-3이나 4-2-3-1 등의 포메이션에서 윙어로서의 활약은 제한적이었습니다.
베컴은 수비가담도 좋긴 하지만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서 활동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득점력과 드리블 역시 특출나진 않아 중앙 미드필더 자리를 소화하기엔 가능했으나, 세계적인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와 잘 어울릴 만큼 완벽한 모습을 보
여주지 못하였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베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265번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 출전하여 61골을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81번의 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는 12년 동안 프리미어 리그를 6번, FA컵을 2번, UEFA 챔피언스 리그를 한 번, 인터컨티넨탈 컵을 한 번 그리고 FA 유스 컵을 한 번 우승하였습니다.
베컴은 맨유의 '7'번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가 이 등번호를 받게 된 것은 클럽에 입단한 이후로 네 번째였습니다.
그는 데뷔 시즌에 '28'번을 착용하였고, 이후 '95/96' 시즌부터 '24'번으로 바꿔 정규 멤버로 활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96/97' 시즌부터는 '10'번으로 바꾸어 마크 휴즈가 달던 등번호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테디 셰링엄이 맨유에 합류하고 에릭 칸토나가 은퇴 발표 후 베컴은 자신의 등번호인 '10'번을 셰링엄에 양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맨유에서 나머지 생활 동안 상징적인 숫자인 ‘7’ 번을 달고 뛰며 슈퍼스타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레알마드리드CF
2003년 여름 이적 시장이 다가오면서, 맨유는 베컴을 바르셀로나로 팔 것으로 보였습니다. 두 구단은 베컴의 이적에 합의했지만, 예상 외로 그는 레알 마드리드와 4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적은 2003년 7월 1일에 완료되었고, 베컴은 로리 커닝엄과 스티브 맥마나만에 이어 세 번째로 레알 마드리드의 일원이 된 잉글랜드 선수였습니다.
베컴은 클럽과 대표팀에서 '7'번을 달았으나, 레알 마드리드의 '7'번은 전설적인 선수인 라울 곤살레스가 착용하고 있어서 그는 '23'번을 선택하였고, 이 숫자는 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본래 포지션인 오른쪽 윙어 위치에는 이미 포르투갈의 전설적인 윙어 피구가 있어서 중복된 포지션으로 인해 중앙미드필더로 기용되었습니다. 익숙치 않은 포지션에서 활약하게 됐습니다.
엄청난 이적료를 주고 영입한 베컴이 아쉬운 활약을 보여주자 스페인 언론들은 그를 비난하는 기사를 썼고, 가십기사를 쓰기 위해 그의 사생활까지 취재하는 등 언론탓백에 시달렸습니다.
처음에는 실패로 보였던 베컴의 레알 마드리드 진출이지만, 조금 지나자 리그에서 완전히 적응하게 되면서 원래 자신의 자리인 오른쪽 윙어 자리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카펠토프 감독도 리그 순위가 간신히다보니 당장 반니스텔 로이에게 직접 크로스 배달을 잘하는 베컴을 안 쓰긴 어려웠고, 06-07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초반에는 위태위태한 출발을 하였으나 막판에 대폭발한 반니스텔로이-라울 투톱에 이를 보조하는 베컴의 엄청난 활약으로 대역전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우승청부사의 명성을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시즌 종료 후 경질당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경질 이유는 "레알 마드리드답지 않은 축구를 했다"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당신이 필요 없다던 베컴의 활약으로 우승해놓고 그게 어떻게 당신 능력이냐"라는 뉘앙스가 강했습니다.
해당 시즌의 베컴은 대단했습니다. 그와 잘 맞춰주던 판 니스텔로이는 라리가 데뷔 시즌에 득점왕을 차지하였습니다. 최종적으로 베컴의 레알 마드리드 생활은 라리가 우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LA갤럭시 / AC 밀란
베컴은 LA 갤럭시의 간판 스타로 활약하였습니다. 이적 당시에는 그가 받은 급여가 메이저 사커 리그에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다른 팀 동료들이 받는 금액을 합친 것보다도 많아서 구단이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미국 시즌이 끝날 때마다 AC 밀란으로 임대되어 경기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정확한 크로스와 노련한 플레이는 밀란의 미드필드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팬들은 그의 활약에 매우 만족하였습니다. 베컴 역시 밀라노에서의 생활을 즐겼습니다. 2010년 시즌에 밀란에서 치른 최종전에서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면서 2010년 월드컵 출전 기회를 잃게 되었습니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 토트넘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지만, 맨유 외의 프리미어 리그 팀에서는 경기하지 않겠다는 자신만의 신념 때문에 거절하였습니다. 2012년 12월, MLS 컵 결승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 마무리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자하는 의욕은 보였으나, 그 후 어느 클럽으로 이동할 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파리 생제르맹 FC
PSG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베컴과 6월 30일까지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공식 발표하였습니다. 연봉 등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주급은 약 15만 파운드(대략 2억5000만원) 수준이며, 첫 5개월 이후에는 1년 계약 연장 여부를 논의하기로 하였습니다.
베컴은 PSG 입단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첫 5개월 동안의 주급 전부를 어린이를 위한 자선사업에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한국의 야구 선수 박찬호가 국내 프로야구에서 뛰었던 시즌 연봉을 모두 기부한 것과 비슷한 사례입니다. 베컴의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약 50억원이 넘는 금액이 기부되었습니다.
그 후, 베컴은 2013년 2월 24일에 마르세유와의 리그1 홈 경기에서 교체로 출전하여 파리 생제르맹 데뷔전을 치렀으며, 그는 이 경기를 통해 PSG 출전 선수 중에서도 역사적인 숫자인 '400'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같은 해인 '13년도에, 베컴은 파리 생제르맹이 리옹을 상대로 '1:0'으로 승리하여 리그1 우승을 확정짓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잉글랜드, 스페인, 미국 그리고 프랑스와 같이 총 네 개 국가의 최상위 리그에서 우승하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은퇴
베컴은 BBC, AP 통신 등을 통해 2012-13 시즌을 끝으로 현역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2013년 5월 16일부로 공식적으로 은퇴하였습니다.
베컴은 2007년 LA 갤럭시로 이적할 때 MLS의 프랜차이즈를 인수할 권리를 부여받았었습니다. 그는 이 권리를 실현하여, 2014년 2월에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 마이애미(가칭)의 구단주 취임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는 이 구단을 통해 2016년 또는 2017년에 본격적으로 리그에 참가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참고로, 인터뷰에서 베컴은 은퇴를 결심한 순간을 '리오넬 메시에게 제껴졌을 때'라고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인터뷰어가 게리 네빌이었기 때문에 농담 조의 대화였지만, 그래도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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