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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강남 나이트클럽 사장 피살사건

by hwani’s 2022. 8. 24.

목차

    강남 나이트클럽 사장 피살사건

    나이트사진(사건과는 무관함)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내용
    3. 사건 발단
         3-1. 당시 경찰의 수사망
         3-2. 피의자 검거와 재판

    사건 개요

    2008년 9월 9일 밤에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시네시티 극장 앞 노상에서 흉기로 살인을 저지른 사건.

    사건 내용

    2008년 9월 9일 밤 11시 30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시네시티 극장 바로 앞 인도에서 해남십계파 조폭 두목 박사문(당시 38세)과 나이트클럽 사장 김모(당시 40세)씨는 서로 다투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김씨가 박사문의 얼굴을 때렸고, 김씨의 손찌검을 맞아 바닥에 엎어진 박사문은 입고 있던 옷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접이식 칼을 집어 들고 김씨의 명치와 어깨를 1회씩 찔렀고, 심장이 얕게 찔린 김씨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 피습을 당한 지 약 1시간 30분 뒤인 10일 새벽 1시경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사건 발단

    당시 해남십계파 두목인 박사문은 또 다른 조폭 OB파 출신인 김씨와 한 코스닥 기업에 거액을 공동으로 투자한 뒤에 증시 침체로 인한 주가 하락 때문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건 초반에 경찰은 서로 금전문제로 다투던 중에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짐작했으나 두 명이 서로 다른 조직의 조폭이며, 피해자인 김씨가 대형 나이트 클럽의 사장인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조폭들 사이의 이권 다툼일 가능성도 고려해 김씨가 안치된 병원 영안실에 이를 우려하여 경찰을 배치했다.

    당시 경찰의 수사망

    경찰은 목격자 등의 진술을 토대로 박사문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주소지인 강남구 역삼동과 박사문의 고향이 있는 전라남도 일대를 중심으로 수사를 벌여왔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피해자가 박사문 측에게 기업 인수에서 손을 떼라고 하였는데, 박사문이 이를 거절하여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음이 밝혀졌고, 사건 직후 경찰은 박사문에 대한 공개수배 전단을 전국에 배포했지만 검거에 실패해 2009년 하반기부터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박사문을 올리기까지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4년 2개월 동안 박사문을 잡지 못했다.

    피의자 검거와 재판

    2011년, 강남경찰서와 서울지방경찰청의 추적을 피해 잠적한 박사문이 고향인 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는데, 이때 박사문은 도피 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해남과 광주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던 상황. 이때 박사문은 검은 유리로 된 자동차만 타고 다니며 걸어서는 절대 이동하지 않았다.

    2012년 1월 4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아파트에 박사문이 있다" 라는 신고를 받은 서초경찰서는 박사문을 단번에 잡기 위해 강력팀을 출동시켰으나, 검거에 실패. 아파트 안에는 박사문은 없었고, 도박판이 차려져 있었다. 이때 그 곳에서 돈을 걸고 도박을 하던 35명이 줄줄이 체포되었는데 이 역시 허위신고일 가능성이 있다. 때마침 해남경찰서 수사과에서 근무 중이던 김성혁 경사는 박사문을 집중적으로 쫓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2012년 7월 30일에 김성혁 경사는 박사문을 포착. 이때 김성혁 경사는 박사문을 포함한 모든 조직원을 미행해 과학수사팀 직원과 함께 해남에 있는 한 건설회사 사무실에서 나오는 박사문을 포함한 조직원, 부두목, 부두목의 BMW 자동차를 차례차례 카메라로 찍어냈다. 이때 김성혁 경사가 정보원을 통해 박사문이 도피 과정에서 성형수술을 했음과 그쪽에서 걸어나오는 사람 중 한 명이 수배 당시 사진의 인물과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서 김성혁 경사는 자리를 옮겨 부두목이 살고 있는 광주광역시 수완지구와 박사문의 지인이 장사를 하고 있는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일대를 오가며 박사문이 나타나는 즉시 잡기 위해 잠복을 하였다. 검거 당일인 2012년 11월 5일 오후에도 충장로, 금남로, 대인동 일대에서 잠복하던 중에 대인동의 한 유료 주차장에서 부두목의 BMW 자동차를 발견. 마침내 11월 5일, 김성혁 경사가 잠복을 한 지 2시간 만에 박사문은 부두목의 BMW 자동차 옆에 주차된 현대 쏘나타 자동차에 타려고 했다가 현장에서 대기 중이던 형사 4명에 의해 결국 체포되었다. 박사문은 도피를 하던 4년동안 당시 체중이던 100kg에서 몸무게를 20kg가량 감량한데다가 서울의 한 병원에서 쌍커풀과 보톡스 수술을 받아 수배 전단에 실린 사진과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성형 사실을 부인했다가 쌍커풀 수술을 했음을 시인했고, 박사문이 타려고 했던 현대 쏘나타 차량의 트렁크에는 등산 장비, 운동화, 텐트, 낚싯대, 등산모 등이 실려 있어 박사문의 은신생활상이 짐작되었다.

     

    박사문은 강남경찰서에 인계되기 전, "내가 죽였던 김씨 측과 합의하지 못해 아쉽다", "내 운명이다. 이렇게 잡힐 줄 알았다." 라고 반성의 기미를 보이며 순순히 연행에 응했다.

     

    경찰은 살인죄를 적용했으나, 검찰은 경찰과 달리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보고 상해치사죄로 그를 구속 기소했다. 2013년 5월 24일, 서울중앙지법은 그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고, 2015년 11월 4일에 만기 출소했다.

     

    재판 당시 박사문은 2억원을 주고 유족들과 합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