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희대의 연쇄 살인범 유영철 체포

hwani’s 2022.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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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연쇄 살인범 유영철 체포

목차
1. 유영철 체포

유영철 체포

2004년 7월 15일 "특정 번호로 불러낸 마사지사들이 자꾸 실종된다"는 출장 마사지 업주의 신고로 체포되었는데, 당시 경찰은 유영철을 '마사지사들을 납치해서 지방으로 팔아치운다는 납치범' 정도로 생각, 조사를 하면서 "전화로 불러낸 마사지사를 어떻게 했느냐?"라고 질문하였다. 이때 유영철은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바로 나"라고 진술했으나, 구체적인 정황을 모르는 척 연기하며 경찰을 혼란스럽게 만들다가 "시체를 숨긴 장소를 알려주겠다"고 말하고는 경찰서를 나서다 도망쳤으나 11시간 만에 영등포역에서 붙잡힌다.

 

조사 내내 묵비권을 행사했으나, 김용화 수사부장(경무관)이 와서 직접 조사하자 4건의 살인을 자백. 현장 검증에서 26명을 살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내장이 모자라는 시체가 몇 구 있어 추궁했더니 식인도 했다고 자백. 결국 최종적으로 살해된 희생자는 20명으로 확인된 이후 8월 13일 구속 기소되어 이문동 살인 사건을 제외한 20명에 대한 살인죄의 유죄가 인정되어 2005년 6월 9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고, 17년이 지난 현재도 구치소에서 복역 중.

 

여기서 검찰의 실수를 확인할 수 있다. 유영철이야 어차피 이문동 살인사건이 유죄가 되건 말건 똑같은 사형이지만 희생자 유가족들의 처지가 문제인데, 만약 여기서 이문동 살인사건을 유죄로 판결하면 희생자 가족들은 영영 진범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구체적인 증거도 없으면서 상고심까지 끌고 갔고 결국 확정판결 이후인 2006년에야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이 사건을 저지른 것을 자백하고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됨으로써 뒤늦게 진범이 밝혀졌다.

 

유영철에 대한 사형은 17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집행되지 않아, 사형 미결수로 분류되어 있다. 2007년 1월경 법무부에서 유영철에 대한 사형을 추진하다가 당시 청와대의 반대에 막혀 무산된 바 있다. 그가 살해한 희생자들은 대부분 금전에 상관없이 그저 그가 죽이기 쉬운 사람들이었다. 유영철은 경찰 조사 중 윤락녀처럼 보이는 여성을 주로 노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닌 사람도 있었고, 오히려 여성의 옷차림이 강간 및 살인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매우 잘못된 통념을 불러오게 되었다. 유영철이 고른 여자 중에 윤락녀가 있는 합리적인 이유는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기 쉬운 데다 섣불리 경찰에 신고를 못할 가능성 때문에 선택했던 것일 뿐.

 

초기에 저지르는 범죄와 후기에 저지르는 범죄가 어느 정도 차이점을 보인다. 초기에는 타인의 가택에 불법 침입하여 둔기를 휘둘러 살해하는 방식을 사용한 반면에, 후기에는 주로 출장 마사지사를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곳에 불러들여 살해 후 시체를 훼손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주택가 CCTV에 자신의 뒷모습이 완벽히 잡혀서 신고 있던 신발 종류부터 해서 머리에 쓴 모자까지 완벽히 나열된 채로 수배되자 두려움으로 인해 범행에 소극적이 된 것. 또 이후 은둔 생활을 하다 돈이 궁해진 데다 이혼 통보를 한 아내에 대한 원한으로 성매매 여성들을 불러 금전을 빼앗은 뒤 여성이 업주에게 스스로 '좋은 사람을 만났다. 그만둔다'며 거짓 전화를 강요하는 식으로 가짜 알리바이까지 만들어 놓고는 손망치로 살해한 것.

당시 유영철이 체포된 뒤 경찰에서는 프로파일링의 승리라고 자화자찬을 벌였으나, 실제로 유영철을 붙잡은 건 보도방 업주들이었다. 특정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간 여인들이 잇달아 돌아오지 않자, 몇몇 보도방 업주들이 회담을 했고 전화번호를 요주의로 분류하고 그 결과 유영철을 유인해 붙잡았다. 유영철이 체포됐을 때 마스크를 쓴 것도 보도방 업주들한테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유영철은 꼬리가 밟힐 것을 우려해 한 번 이용했던 업소 전화번호는 다시 이용하지 않았지만, 그 각기 다른 전화번호들이 최종적으론 한 업소로 수렴된다는 걸 몰랐다는 것.

 

그 때 경찰은 업주들의 요청에 따라 한 명을 딸려 보냈는데, 그 때문에 자신들(경찰)이 체포했다고 광고하면서 자화자찬하고 관계자들을 승진시켰다가 사실이 밝혀지자 중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보도방 업주들은 반년 후 모조리 다 구속되고 처벌된다. 이것이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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