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인 사건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내용
3. 그 후
사건 개요
1990 년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유괴 살인 사건 중 무척 유명한 사건.
피해자 아동의 길고 독특한 이름과 특히 범인이 임산부라는 점으로 사회에 깊은 충격을 준 사건.
사건 내용
1997 년 8 월 30 일 , 범인 전현주 ( 당시 28 세 , 여성 )는 서울 잠원동 뉴코아백화점 버거킹에서 콜라를 마시며 서성이던 도중, 영어 학원의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귀가하던 피해자 박초롱초롱빛나리 ( 사망 당시 7 세 , 1989 년 9 월 8 일 생 )를 구슬려서 소품 제작실 겸 창고로 사용하던 사당동 지하 창고로 유인, 유괴하였다. 그리고 당일 저녁 총 3 차례에 걸쳐 피해자의 부모에게 공중전화를 통해 2 천만 원의 몸값을 요구. 전현주는 첫 번째 협박 전화를 한 뒤 수면제를 먹였으며 , 울면서 집에 보내줄 것을 애원하는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 후 시체는 창고에 유기했다.
유괴 다음 날, 전현주는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피해자의 부모에게 전화상에서 말한 액수의 금액을 준비하고 오라는 내용의 전화를 하던 중 발신지 추적으로 들이닥친 경찰의 검문에 걸렸다. 경찰은 전화가 걸려온 지 9 분만에 신속하게 전현주를 포위했지만 , 커피숍에 있던 13 명의 사람 ( 여자 12 명, 남자 1 명 )을 검문하다 임신 8 개월 상태인 전현주가 설마 범인이겠느냐며 놓아버리게 되었다. 심지어 엉터리 몽타주까지 만들어내 전국에 뿌려댄 탓에 10만 장의 종이가 휴지조각이 됐다.
하태신 서장 ( 서초 경찰서 ): 임산부라는 말도 듣지 못했고 또 , 같이 동행한 사람들이 신원을 확인하면서 항의를 하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전부 다 돌려보냈습니다.
현장에서의 체포는 결국 실패했으나 대신 차선책으로 상기된 카페에 있던 13 명 모두에게 형사들을 미행으로 붙여 조사했고 , 전현주가 용의 선상에 있었기에 경찰은 이미 집 주변을 수사 중이었는데 , 이를 지켜보며 의아해한 전 씨의 아버지가 9 월 11 일 경찰에 자신의 딸 ( 전현주 ) 이 범행 직후인 9 월 1 일부터 가출 상태임을 알렸다. 또 경찰에게 협박범의 목소리가 자기 딸의 목소리라고 증언했다. 결국 통화 내역으로 꼬리를 잡힌 전현주는 9 월 12 일 신림동의 한 여관에서 검거되었다. 결국 전현주의 부모가 신고했는데 , 자신의 딸이지만 어린이 유괴 살해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는 범죄였기에 부모들도 결국 등을 돌리고 만 것.
참으로 애절하고 비통한 심정입니다. 살아서 부모품에 안기길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박나리 양은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늘 확인됐습니다. 천금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 심정으로 지금부터 이 박나리 양 유괴 사건 속보 전해드립니다.
- 박나리 시신 발견 당일 KBS 뉴스 9 오프닝 멘트 중에서
검거 당시 전현주는 임신 상태였으며 , 그 해 2 월에 결혼식을 올린 상태였다. 내무부 산하기관에 근무하던 고위 공무원 출신 아버지를 둔 전현주는 유복하게 자랐으며 , 본래 의사나 작가를 지망하고 있었으나 본인의 의지와 달리 모 대학 무역학과를 거쳐 응급구조학으로 전공을 바꾼 후 미국행 유학길에 올랐다. 사건 2 년 전인 25 세 당시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해서 총학생회 간부를 맡기도 했다. 커피숍에서 검문에 걸린 상태에서 전현주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서울예대 후배들이 경찰에게 임산부를 거칠게 대하지 말라며 항의하는 통에 경찰이 풀어준 것도 이 때문인데 , 전현주가 범인으로 밝혀지자 서울예대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는데 , 비난이 얼마나 심했는지 사건과 아무 관계없는 서울예대생들이 학교를 못 다니고 휴학을 해야 했을 정도.
전현주는 사치와 낭비벽이 심한 터라 결혼 후 3 천만 원의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유괴를 계획하게 된다. 박나리 양의 어머니 한영희 씨는 범인의 검거 소식에 딸을 찾을 수 있으리라 굳게 믿으며 경찰서로 달려가 취재진들 앞에서 감사 기도까지 하였지만 , 머지않아 딸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충격에 빠지고 사당동 어디냐고 외치며 넋을 잃은 그 모습이 지상파로 전국에 방영되었다. 당시 박나리 양은 서울원촌초등학교 2 학년 5 반에 재학 중이었는데 ,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원촌초등학교의 학생들은 분노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전현주의 자백에 따라 창고를 수색한 경찰은 심하게 부패한 박 양의 시체를 발견했다.
단독 범죄로 결론 났으나 남편은 물론 박나리 양의 유족들까지도 전현주의 체포 직후부터 전현주의 단독 범행을 믿지 않았으며 의문을 제기했다. 전현주가 체포될 때 남편은 망연자실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고 한다. 이후 사건 현장인 사당동의 지하 창고에서 그가 범행 당시의 상황을 재연할 때 " 현주야 사실대로 말해! 너 아니잖아 인마! 시키는 대로 했잖아!"라고 울부짖는 남편의 절규가 지상파에서 방영되었다.
그 후
검거 후 범인은 자술서에서 , 검찰에 검거되기 전 부모가 자신에게 5번이나 자살을 권유했다고 썼다. 부모는 " 네가 속죄하는 길은 자살뿐이며 , 우리도 곧 따라갈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 " 라며 약국에서 살충제까지 구입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검거 당시 여관 내부를 촬영한 뉴스 영상을 보면 테이블에 살충제 병이 그대로 나온다. 딸이 홑몸도 아니고 임신까지 했는데도 자살을 권했다는 점에서 , 부모가 얼마나 자포자기 심정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경찰 조사 도중 전현주는 그런 부모가 걱정되었는지 동생에게 " 부모님을 잘 보살펴드리고 , 자살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 "라는 당부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
범인은 전문가들에 의해 연극성 성격장애로 진단받았다. 진술 도중에도 증언을 번복하고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공범의 존재를 주장하는 등 동정심에 호소하고 자신의 죄질을 낮추고자 온갖 이유를 동원해 변명하려 애썼다. 이때 공범이 있다는 진술이 언론을 타면서 뉴스에서 공범에 의한 2 차 피해를 경고하기도 했으며 , 끔찍한 범죄를 도와준 공범들의 존재를 믿었으나 얼마 후 임산부의 단독 범행이라는 게 다시 밝혀지며 사회는 더욱 충격에 빠졌다.
서울지검은 진술조차 거짓을 반복하는 전현주의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단해 사형을 구형했고 , 1 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 결국 항소심에서 감형되어 무기징역이 확정되며 53 세인 현재까지 교도소에 복역 중.
전현주는 그 뒤에 경찰병원에서 딸을 낳았으며 , 남편이 곧바로 아이를 데려갔고 이후 미국으로 입양을 보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범죄자가 임산부일 경우 인근 병원에서 출산 후 바로 주변 가족에게 인계한다. 가족이 없을 경우 어쩔 수 없이 교도소에서 아이를 키우게 되며 18 개월 후에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자신의 엄마가 엄청난 사건의 범인임을 감안하면 ,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게 거의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기에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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