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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주한미군 케네스마클 민간인 윤금이씨 살해사건

by hwani’s 2022. 8. 4.

목차

    주한미군 케네스마클 민간인 윤금이씨 살해사건

    케네스 마클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내용

    사건 개요

    1992년, 경기도 동두천시 기지촌에서 주한미군인 케네스 마클 육군 이병이 당시 26세였던 민간인 여성 윤금이 씨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대학가에서 주한미군 철수시위를 불러일으켰으며 불평등한 주한미군 사법처리 문제를 환기시켰다.

    사건 내용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431-50번지에서 윤금이 씨(당시 나이 26세)의 참혹한 시신이 집주인에 의해 발견, 시신은 유가족에게 인도 후 화장됐다.

    가해자는 미 육군 제2보병사단 제20보병연대 5대대 본부중대 의무대 소속 케네스 마클(Kenneth Lee Markle Ⅲ) 의무 이병으로, 사건 후 미 육군 범죄수사대와 경기지방경찰청 의정부경찰서가 수사에 나섰다. 이에 목격자들의 진술 및 제보로 신원이 밝혀져 잡혀갔으나, 얼마 안 가 미 육군 군사경찰대로 신병 인도됐다.

     

    엽기적인 범행 장면도 세간에 충격을 줬지만 사건 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한미관계의 불평등에 분노한 전국 5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주한미군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윤금이공대위)'를 수립하여 시위를 시작하였으며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의 '미군 승차 거부 운동', 상인들의 '미군 손님 안 받기 운동' 등이 이어졌고, 공대위도 <피의자 케네스 마클 구속 및 엄중한 처벌과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란 성명서를 2사단에 제출했다.

    시위는 동두천을 넘어 전국에까지 파급됐다. 더 나아가 SOFA 개정 요구도 힘을 얻었다. 다만 공무원이나 일부 보수적인 시민, 경찰 등은 "양공주 하나 죽었다고 세상이 이리 시끄럽냐, 하찮은 년의 죽음으로 한미관계에 금 가게 할 순 없다." 는 식으로 시위를 맹비난했다.

     

    게다가 윤금이씨 시체 사진이 대학가 등 집회장에 공개되면서 반미감정이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가해자 마클 이병은 재판 내내 관련 혐의를 부인한 채 시신 훼손은 자신을 질투한 제이슨 램버트 육군 상병이 했다고 주장. 게다가 마클의 아버지도 아들이 한국 감옥으로 이감되지 않길 바라며 1994년 미국 연방대법원에 탄원서를 냈으나, 윌리엄 렌퀴스트 연방대법원장은 이를 기각했다.

     

    결국 1심에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1993년 항소심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고, 항소심 전 윤금이 유가족들은 미국 정부로부터 민사상 배상금 7,100만 원을 받았는데, 이는 2심 선고에 영향을 끼쳤다. 1994년 대법원도 2심과 동일한 판결을 내리면서 천안소년교도소에서 복역했으며, 1995년 어린이날 당시 교도소 복역 중에도 수감 동료인 미 육군 병사와 난동을 부리는 등 그닥 모범적으로 수감 생활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수감 중에 교도관에게 욕설과 폭행을 일삼아 벌금 200만원이 선고되었으나 이를 납부하지 않아 노역 100일이 추가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8월 가석방되었는데, 그 즉시 미국으로 잽싸게 출국했다. 이 사실은 두달 뒤에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자료 요청을 해서 알려졌는데, SOFA에 따르면 주한미군 범죄자는 석방 뒤 한국 감독권에서 자동적으로 벗어나 미국 정부의 관리를 받는다. 그러나 미국 측이 공식적으로 그들의 소재지 및 생활태도 등 기초적 정보를 공지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현지에선 면죄부가 주어진다. 당연히 이와 별개로 마클 이병은 형 확정 즉시 미 육군에서 불명예 전역 처리되어 제적되었다.

     

    사건 이후에도 한미 양국이 SOFA 개정에 손을 대지 않아 미군 범죄는 연속으로 발생했고, 2000년 이태원 접대부 살인사건을 계기로 SOFA 개정 운동이 전개되어, 2001년부터 미군 범죄자를 기소 시점부터 한국 정부가 인도하는 쪽으로 SOFA 규정이 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