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일본 홋카이도 다이세쓰산 아사히다케 조난 사건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내용
2-1. 제3의 인물
3. 의문점
3-1. 남겨진 카세트 테이프
3-2. 제3의 인물은 누구인가?
4. 사건의 진상
사건 개요
1989년 7월 24일 일본 홋카이도 다이세쓰산 아사히다케(旭岳)에서 일어난 의문의 조난 사건이다.
사건 내용
1989년 7월 24일 오후, 등산 중 행방불명된 조난자 2명을 찾기 위해 홋카이도 경찰 측에서 헬리콥터로 수색을 했다. 그런데 수색 도중 등산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쓰러진 나무로 만든 'SOS'라는 문자 표시를 발견한다. 조난자들은 그곳에서 2~3 km 떨어진 북쪽에서 무사히 구조되어 모든 사건이 일단락되는가 했더니, 그 조난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SOS 표시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조난자가 표시를 만들었다고 판단한 경찰 측은 다시 헬리콥터까지 동원해서 조사했더니, 동물에 물린 흉터가 있는 유골의 파편과 구해달라고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가 든 회색 가방을 발견했다.
가방에는 남자 목소리가 담긴 녹음 기능이 있는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를 포함해 카세트 테이프 총 4개가 있었다. 그 외에 비누, 칫솔, 치약, 샴푸가 든 비닐제 세면도구 가방, 녹색 플라스틱 컵, 라디오, 부적 등이 나왔다. 여기까지가 1차로 발견한 물품들이다.
유골을 감식한 아사히카와의과대학과 경찰은 입산 명부와 실종자 목록, 유류품으로 미루어 보아 유골을 1984년 7월에 조난당한, 아이치현에 거주하던 25살 남성 회사원 A로 추정했다. 그런데 정작 유골의 DNA를 분석한 결과, 사망한 시기는 당시로부터 약 5년 전이 맞긴 했지만 25~35세 남짓에 키 160 cm, O형 혈액형인 여성이라고 나왔다. 아사히카와의과대학에서 7월 28일 다시 추가 감식을 실시한 결과, 해당 유골은 A형의 남성 뼈로 판정되었다.
이런 결과에 수사는 혼란에 빠졌다. 유골이 발견된 곳 주변에서 망자의 다른 유품은 나오지 않았고 유골과 같이 발견된 가방에서도 유골의 DNA는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추가적인 수사 결과 1984년 7월에 조난당한 그 남자 회사원 A에게는 연인이 있었고, 그 여성 B도 같은 날 산에 올랐다가 행방불명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DNA 검사 결과 연인의 DNA와 유골의 DNA가 일치해 신원이 확인됐다.
이후 경찰은 처음 유골이 발견된 장소 근처에서 2차 발견물품으로 또 다른 유골과 남성의 면허증, 남성용 시계를 함께 발견했는데, 유골은 남자 회사원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회사원 커플이 등산 중 조난당했고,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SOS 문자를 만들고 헬리콥터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등의 노력을 했으나 끝내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제3의 인물
우여곡절 끝에 해결될 것 같았던 사건은 그 남성 A의 가족들에게 유품을 전달하던 시점에 다시 미궁에 빠졌다. 유품을 받은 가족들은 2차로 발견된 유류품인 면허증과 시계는 망자의 것이 맞지만 1차로 발견된 가방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특히 A 남성의 유족들이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된 목소리가 사망자 A 목소리와 다르다고 진술했다. 설상가상으로 DNA 조사 결과 1차 유류품의 DNA와 2차 유류품의 DNA는 서로 불일치했다. 구조문자를 만들고 SOS 구조 신호를 보냈던 남성은 1984년에 조난당했던 회사원 커플이 아닌 제3의 인물 C라는 뜻이다.
경찰은 문제의 제3의 인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다시 유류품 조사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문제의 문자 표시 근처에서 또다른 가방이 발견되었다. 가방에는 부적과 만화책, 카메라 삼각대, 1983년에 만들어진 휴지 봉투, 보험회사 주소가 적힌 서류 봉투가 나왔다. DNA 조사 결과 새로운 가방에서 검출된 DNA는 처음 발견된 가방의 DNA와 일치했다. 경찰은 제3의 인물 C와 회사원 커플 A-B 사이의 치정관계로 얽힌 사건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그런데 제3의 인물의 유류품 날짜는 회사원 커플이 조난당한 시점보다 1년이나 앞섰다. 즉 3명의 조난시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색 끝에도 제3의 인물의 유골만큼은 끝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의문점
문자는 큰 자작나무를 3그루 이상 쌓아올려 만든 것이다. 그리고 문자의 한 폭은 5 m 이상이라 제작하려면 성인 남성이라도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주변에는 자작나무가 없었다. 이 표시는 발견되기 1년 10개월 전인 1987년 9월 20일 일본 국토지리원에서 촬영한 항공사진에도 찍혔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단지 문자 폭이 사진상에서는 불과 0.9 mm에 지나지 않았기에 모르고 넘어갔던 것이다. 현재까지도 저 표시가 왜 생겼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의문점은 "이 표시를 만든 조난자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다. 키 160 cm에 불과한 여자 한 명이 폭 5 m 너비로 산 속에서 나무 문자 표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남성이였어도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남겨진 카세트 테이프
카세트 테이프의 케이스 중에는 마법의 프린세스 밍키모모가 그려진 스티커가 붙은 것도 있었고, 애니 마크로스의 주제가가 녹음된 테이프도 있었다.
유류품으로 남겨진 테이프의 녹음 내용 전문이다.
SOS 助けてくれ 崖の上で身動きとれず(SOS! 도와달라. 벼랑 위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
SOS 助けてくれ 崖の上で身動きとれず(SOS! 도와달라. 벼랑 위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
SOS 助けてくれ(SOS! 도와달라.)
場所は初めにヘリに会ったところ(장소는 맨 처음 헬기를 봤던 그 곳이다.)
笹深く上へは行けない(조릿대가 우거져있어 위로 올라갈 수 없다.)
ここから吊り上げてくれ(여기서 끌어올려 달라.)
'헬기'를 언급했으므로 헬기가 조난자가 있던 곳의 상공을 비행한 적이 있었고,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의문점은 녹음을 한 이유다.
첫 번째로, 테이프에 큰 소리로 녹음하고 최대 볼륨으로 재생하면 원래 목소리보다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고 에너지를 비축할 수도 있으므로 구조를 위해 녹음했다는 설이 있다.
두 번째는 녹음 도중 말이 두 번 끊기고, 숨소리도 거칠며 메아리가 크게 울린 점을 들어 조난당한 상황에서 헬기를 보고 소리치며 마구 움직이다가 가방 속 카세트 녹음 스위치가 눌러져 우연히 녹음되었다는 설이다.
또다른 의문점은 유류품이 발견된 장소 주변은 능선이라 벼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난자는 벼랑이 있던 장소에서 녹음을 먼저 했고, 탈출을 위해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소지품도 그대로 둔 채로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물론 벼랑에서 사망한 조난자의 소지품을 누군가 모종의 이유로 가지고 온 것일수도 있다.
제3의 인물은 누구인가?
지금 이 사건을 정리해보면, 제3의 인물이 1983년에 조난당했고[3] 그로부터 1년 뒤 1984년에 아이치현에 거주하는 회사원 커플이 입산 후 조난당했고 문자 표시 근처에서 사망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끝내 1983년에 조난당한 제3의 인물의 행적과 정체는 밝혀내지 못했다.
사건의 진상
일본 위키백과에서 밝히고 있는 사건의 진상은 다음과 같다.
1989년 7월 24일 오후, 홋카이도 경찰 소속 헬기 긴레이 1호는 다이세쓰 산계(山系)의 구로다케 산을 출발해 아사히다케 산을 목적지로 등산을 하다 실종된 도쿄도 거주 남성 2명의 행방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긴레이 1호는 등산 루트에서 떨어져 있는 아사히다케 산 남쪽 주베쓰 강 수원지 인근에서 SOS 표시를 발견하게 된다. SOS 표시는 쓰러진 자작나무로 만들어졌으며, 한 변의 길이가 약 5m 정도였다. 그리고 얼마 후, 남성 2명은 SOS 표시로부터 북쪽으로 2~3km 정도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되어 무사히 구조되었다. 홋카이도 경찰은 구조된 남성 2명이 SOS 표시를 만들었다고 보고 사정을 청취했지만, 그 둘은 이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다른 조난자가 있다고 판단한 홋카이도 경찰은 다음 날인 7월 25일에 재차 헬기를 파견, SOS 표시 인근에서 동물에게 물린 자국이 있는 백골화된 골반뼈, 상완골 등이 산산히 흩어진 인골 일부와 가방, 카세트 테이프 4개, 테이프 레코더, 부적 등 유류품을 발견한다. 인골은 즉시 아사히카와의과대학으로 보내졌으며, 감정 결과 20대~40대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편, 같이 발견된 카세트 테이프에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방영된 애니메이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및 마법의 프린세스 밍키모모의 주제곡, 애니메이션 관련 라디오 방송 녹음 등이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테이프 레코더 안에 들어 있던 카세트 테이프에서 라디오 방송 이후에 젊은 남성이 하나 하나 끊어서 외치는 구조요청이 2분 17초 간 녹음되었다.
SOS 표시는 1987년 9월 20일 일본 임야청(한국 산림청에 해당)이 촬영하여, 일본 국토지리원 지형도 제작에 사용된 항공사진에도 찍혔음을 뒤늦게 확인하였다.
첫 수색 후 사흘이 지난 1989년 7월 28일, 경찰이 실시한 재수색에서 두개골을 포함한 인골, 카메라용 삼각대, 남성용 농구화가 발견되었다. 경찰은 1984년 7월에 아사히다케 산에서 행방불명된 아이치현 고난시 거주 남성(회사원)에 주목했다. 실종 남성이 카메라를 들고 다녔고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녹음하곤 했다고 지인이 증언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농구화 사이즈가 실종 남성의 발 사이즈와 동일하고, 부적은 실종 남성 거주지 근처의 신사에서 파는 물건이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실종 남성과 불상 여성이 같이 조난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당시 아사히다케 산에서 실종된 여성은 없었으며, 실종 남성도 혼자서 산을 찾았고, 유류품 가운데 여성용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한때 수사는 혼선을 빚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 결과, 여성의 유골이라고 추정했던 첫 번째 감식이 오류를 범했다고 드러났다. 다음해인 1990년 2월 28일, 아사히가와히가시 경찰서는 그동안 발견된 모든 유골과 소지품이 아이치현에 거주하던 실종 남성 한 명의 것이었고, 관련 조난자도 그 한 명이었다고 발표했다.
만약 가짜 금고바위를 이정표로 삼아 하산하면 길을 잃고 SOS 표시가 있던 조난 지역으로 가게 된다. 이 곳은 비스듬하게 누운 조릿대가 빼곡하게 자라기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기는 수월해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기는 매우 힘들었다. 더욱이 조난 지역 아래쪽은 급경사의 절벽이라 자력탈출이 거의 불가능했다.
실제로 이 사건이 알려지고 며칠 후, 조난 지역을 찾은 언론사 취재팀이 똑같이 고립되었다가 구조된 일도 있었다. 테이프에 녹음된 목소리 또한 이런 상황에 처해 구조를 요청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테이프 녹음은 실종자가 쇠약해져 구조대가 와도 소리칠 기력이 없을 상황을 대비해서 녹음했거나, 구조를 요청하던 와중에 우연히 테이프 레코더의 녹음 버튼이 눌려 의도치 않고 녹음되었으리라 추정한다.
또한 SOS 표시는 실종 남성이 쓰러진 자작나무를 이용해 약 이틀간에 걸쳐 상당한 체력을 쏟아 만든 듯하다.
이는 실종 남성이 애니메이션 애호가였는데 철완 아톰 달 뒤의 비밀(月のうらの秘密) 에피소드에서 나무로 SOS를 그려 구조 요청을 하는 장면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그밖에도 위험한 장소를 이동하며 체력을 쏟느니 한 곳에서 머물면서 체력을 보존하려 했다는 추측, 현장에서 고립되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추측이 있다.
결론은 혼자 험준한 산을 찾았던 젊은 남성이 실수로 조난되어 자력 탈출이 힘든 곳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했지만 결국 탈진해 사망한 사건일 가능성이 높으나, SOS 표시, 녹음과 같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미스터리 요소가 많아 이런 저런 허구적인 이야기가 붙으며 특히 한국에서 괴기한 미스터리 사건으로 잘못 알려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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