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하던 김보은양 의붓아버지 살해 사건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정황
3. 사건 발생
4. 사건 수사
5. 사건 판결
6. 사건 이후
사건 개요
1992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의붓아버지 김영오에게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하던 20대 여성 김보은(金甫垠)이 남자친구 김진관(金鎭寬)과 함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
남자친구의 이름까지 더해서 '김보은·김진관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쉬쉬했던 가족에 의한 성폭행 문제가 공개적으로 제기되었다. 실제로 당시 상담기관에서는 많은 가정 성폭력 사례가 접수되고 있었으나, 여성인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미미하고 보수적인 국민 정서 때문에 숨겨지고 있었고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떠오른 것은 이 사건이 최초였다.
사건 정황
김보은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으며, 이후 그녀가 7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김영오'라는 공무원과 재혼을 하였다. 드디어 자신에게도 아버지가 생겼다며 기뻐했던 김보은의 생각과는 달리, 이 자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 말종 이었는데, 의붓딸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해댔던 것. 그것도 그녀가 고작 만 9세에 불과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김영오는 사건 당사자인 김보은 이외에도 여러 사람에게 강간을 일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 근무자였기 때문에 거듭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훗날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검찰이 재판정에서 그를 지나치게 옹호하여 굉장히 큰 논란이 되었다. 덤으로 자신의 직위를 악용하여 음란물 단속 시 압수한 물건을 자신이 집에 가져와서 '수사 참고'를 이유로 감상했다고 한다.
심지어 김영오는 김보은을 강간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고 하며,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뉴스 라이브러리에 보면 김보은이 새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을 같이 눕혀놓고 번갈아 성행위를 하기도 했다고 진술하는 그 당시 신문 기사도 볼 수 있다.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김보은이 성인이 될 때까지 10년 이상 이런 짓거리를 계속했으며, 심지어 '내가 너와 네 엄마 둘 모두와 관계했으니 이제 엄마를 형님이라고 부르라'며 낄낄대기까지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반면 그 아버지에 그 아들들이라고 김영오가 전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들도 김보은을 추행하려 들었는데, 김영오가 엄청나게 분노하며 아들들을 무지막지하게 폭행해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성추행이 나빠서가 아니라, 보은이는 아버지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 나중엔 뉘우치면서, 그들마저도 '친누나가 어릴 때 죽은 게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자기 친딸이라도 살아있었으면 분명 보은이처럼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사건 발생
시간이 흘러 김보은은 한 대학교의 무용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드디어 김영오에게서 떨어져 자유를 누리나 했더니 김영오가 김보은의 모든 행동의 자유를 하나하나 간섭하기 시작. '너 수업 시간표 좀 보자. 이 시간이 수업 시간이구나. 수업 시간 외에는 기숙사에 쳐박혀 있어라. 그리고 주말에는 무조건 충주로 내려와라' 이런 식으로. 그리고 주말에는 반드시 집에 오도록 협박하여 성폭행을 저질렀다.
그런 와중에 김보은에게 남자친구(김진관)가 생겼다. 자신과 데이트할 시간이 없는 것을 궁금해한 김진관이 그 이유를 캐묻자 김영오의 행동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던 김보은은 결국 김진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게 되었다. 큰 충격을 받은 김진관은 이 문제로 계속 갈등하다가 결국 '김영오를 처단한 후 강도 사건으로 위장할 것'을 김보은과 공모했다.
김진관은 범행 전날 서울 창동시장에서 범행에 사용할 식칼, 공업용 테이프, 장갑 등을 구입하여 범행 장소인 충주에 내려갔다.
그 후 김보은과의 전화 통화로 범행 시간을 정하고, 범행 당일 새벽 1시 30분 경 김보은이 열어준 문을 통하여 집안으로 들어갔다. 김영오는 술에 취하여 잠들어있는 상태였고, 김진관은 김영오의 방에 들어가 머리맡에서 식칼을 한 손에 들어 김영오를 겨누고 양 무릎으로 양 팔을 눌러 꼼짝 못하게 한 후 깨웠다.
김진관은 체대생으로 덩치와 힘이 좋았는데 그런 사람이 누르고 있는 데다가 잠이 덜 깬 상태이니 제대로 반항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상황. 그 상황에서 '김보은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놓아주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몇 마디 하다가 들고 있던 식칼로 가슴 부분을 세게 찔렀고, 칼날이 심장에 바로 꽂혀 김영오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김보은과 김진관은 강도살인을 당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숨진 김영오의 양 발목을 공업용 테이프로 묶은 다음 현금을 찾아 없애고 장농, 서랍 등을 뒤져 범행 현장에 흩어 놓았다. 또 김보은이 강도에게 당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김보은의 브래지어 끈을 칼로 끊고 양 손목과 발목을 공업용 테이프로 묶었다. 김진관은 달아나고 김보은은 양 손목과 발목이 공업용 테이프로 묶인 채 옆집에 가서 강도를 당했다고 허위로 신고한다. 사건 당시 김보은의 나이 만 19세였다.
사건 수사
이 사건은 의도대로 단순 강도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는데, 어느 경찰관이 왜 의붓아버지와 딸이 한 방에서 같이 잤지?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 친아버지라도 성장한 딸과 아버지는 같은 방에서 잠을 자지는 않는데, 대학까지 들어가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성인이 친아버지도 아닌 의붓아버지와 한 이불을 같이 덮고 잤던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이상하게 생각한 경찰관은 김보은을 떠보기 위해 슬쩍 이런 말을 던졌다고 한다.
"야, 방금 병원 응급실 가서 너희 아버지 봤는데 살아있더라?"
"안 돼! 안 돼!!"
실제 강도 살인이었다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하거나 기쁜 반응을 보였어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기겁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한 경찰관은 사건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 사건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불러왔다. 아무리 의붓아버지라곤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인데 어떻게 아버지가 딸을 강간할 수 있느냐, 죽어도 싸다는 공분을 샀다. 두 사람이 법정에서 한 말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민변을 중심으로 배금자 등 무려 22명에 달하는 변호사가 김보은의 무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발 벗고 나서서 거대한 변호인단이 구성되었고, 당연히 여성단체에서도 들고 일어났다.
그런데 당시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국민학생 이하의 어린아이라면 모를까 대학생이라면 먹을 만큼 먹은 나이다. 어떻게 대학생 정도 나이를 먹고도 의붓아버지를 피해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저렇게 당하고도 도망가지 않았다는 건 혹시 김보은과 아버지의 관계가 내연의 관계는 아니었을까?
김보은이 저렇게 당하도록 김보은의 어머니는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으며 알았다면 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했나?
이런 의문이 제기되자 당시 명성이 높던 심리학자가 김보은과 어머니의 심리를 분석했는데, 그 결과는 이들의 심리상태가 고대 노예의 심리상태와 같다는 것. 노예는 손발이 묶여있지 않고 자유롭다. 손발이 묶여있으면 일을 부려먹을 수 없으니까. 즉, 도망가려면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도망을 못 갔는가? 그것은 주인이 무작위로 노예를 살해하거나 심하게 폭행하는 등 지속적으로 엄청난 공포심을 주어 학습된 무기력을 심어놓기 때문에 그 공포심에 짓눌려 도망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
김양의 어머니가 이혼 이야기를 꺼내본 적도 있으나 그 말에 의붓아버지는 식칼을 휘두르고 쥐약을 들이대며 이혼할 거면 너 죽고 나 죽자 운운하면서 말 그대로 미쳐 날뛰었다고 한다. 결국 죽을까 두려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거대한 변호인단의 노력이 성과가 있었는지 법원은 김보은에게 정당방위의 요건 중 하나인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음을 인정. 지금 현재 성폭행을 당하거나 당할 위험이 있진 않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볼 때 언제 갑자기 일어나서 성폭행을 할 지 모른다는 논리. 하지만 김영오를 살해한 행위가 사회 통념 상 사회적 상당성을 결여하여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방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서' 살해한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긴 어렵다는 것. 마찬가지로 김진관에게도 정당방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정당방위의 현재성은 인정될 수 없고 긴급피난의 현재성만 인정될 수 있다는 것. 다만 보충성 또는 균형성이 결여되어 긴급피난도 성립될 수 없다고 한다.
사건 판결
다만 정상을 참작하여 형량 자체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낮게 인정. 1992년 4월 4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에서 직접 살인을 한 김진관에게 징역 7년, 김보은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제3형사부는 김진관에게 징역 5년, 김보은에게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 그리고 대법원 제1부에서 최종영·배만운·이회창·김석수가 상고를 기각하여 형이 확정.
다만 김보은은 다음 해인 1993년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형의 효력이 상실되었고, 김진관도 그와 동시에 형량의 절반이 감경되어 잔여기간만 보낸 후 만기 출소하였다.
일반적인 경우는 나올 수 없는 형량인데, 이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는 것이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1994년 제정된 〈성폭력 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건 이후
김진관과 김보은 두 사람은 김진관의 복역 이후 헤어졌다. 김진관의 가족들이 두 사람이 너무나 끔찍한 사건을 겪었기에 함께 있으면 평생 그 상처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 그러나 김진관의 가족들은 김보은을 전혀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동정했으며, 출소한 김보은이 자신의 어머니보다 김진관의 부모님을 먼저 찾아뵙고 울며 빌자, 부친은 "네 잘못이 아니니 너무 괴로워 말고 앞으로 열심히 살아라"라고 다독여주기까지 했다고함.
두 사람이 구속되어 있던 기간 동안 김보은의 어머니와 김진관의 아버지는 옥중에 있는 딸과 아들을 대신하여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제정한 제1회 인권상을 받는데, 김진관의 아버지가 아들을 대신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기를 바라는 수상 소감을 밝히고, 김보은의 어머니는 딸 생각에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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