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1997년 북한 부부 간첩 사건(35호실 소속 최정남, 강연정)

hwani’s 202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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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북한 부부 간첩 사건(35호실 소속 최정남, 강연정)

목차
1. 사건 개요
2. 간첩단의 구성
3. 간첩 활동 내용
     3-1. 기본 업무
     3-2. 부 업무

사건 개요

1997년 7월 대한민국으로 남파된 북한 35호실 소속 간첩이자 실제 부부 사이였던 최정남, 강연정이 서툴게 간첩일을 하다가 3달만에 발각된 사건.

실제 부부가 간첩으로 온 것이 특이하게 비춰질 수도 있으나, 1980년대부터는 신분은폐가 쉽다는 장점을 들어 부부 모두 간첩으로 활동시키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7년 당시 안기부가 파악했던 북한 부부 공작조는 10여개 정도였다고 한다.

간첩단의 구성

최정남은 1962년 5월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나, 1984년 4월 사리원대 4학년 재학 중 간첩으로 선발되어 1989년 7월 노동당에 입당했다.

 

강연정은 1969년 10월 평양에서 태어나, 1986년 9월 고등중학교 졸업 직후 간첩으로 선발되어 1994년 8월 노동당에 입당했다. 아버지가 인민군 고위간부인 점과 외모를 인정받아 차출되었다고 한다.

 

1990년 11월 결혼해 아들 남혁(남조선 혁명이라는 뜻의 이름)을 1992년 1월에 낳았다. 아들은 남파되지 않고 부부가 체포될 당시 평양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들은 평양 정치학교와 순안초대소에서 10년 가까이 간첩 훈련을 받았다.

- 정치사상학습(정훈교육), 체력 단련, 야전 생존 훈련, 통신 훈련
- 남한 정치 경제 상황
- 남한 표준어 학습
- 남한 교과서, 주간지를 이용한 시사교육
- 남한 TV, 드라마, 뉴스, 오락프로 등 시청각 교육

 

이들은 1994년 11월부터 베이징, 선양, 연길 등 3차례의 중국 여행을 통해 중국어 실습, 해외 환경 적응 훈련을 받기도 했다.

간첩 활동 내용

기본 업무

1. 고정간첩 고영복, 심정웅에 대한 지도검열. (심정웅에게 암호 해독법과 신형 무전기 사용법 교육, 조국통일상 수상 소식 전해줌, 유사시 서울 지하철을 마비시킬 방안을 알아낼 것.)
2. 서울대 사회학과 고영복 명예 교수를 통해 서울대 사회학과 김(金)모 교수(60) 포섭
3. 새로운 공작 대상자로 전국연합 산하 울산연합 정(鄭) (35)씨와 전주시의원 박(朴) (34) 씨 포섭
그 외에 전국 각지에 드보크 설치하고 무기 은닉하기

부 업무

1. 황장엽 거주지 파악: 당시 암살을 시도하고 있었다.
2. 남한 정세 자료: 한국의 대통령 선거 동향 등
3. 비행기, 열차, 버스 시간표 수집
4. 경북대 김순권 교수가 개발한 우량 옥수수 종자 입수
5. 전자 주민등록증 입수: 당시 시범사업 실시중이었다.

이들은 권총 2정과 3,000만원 가량의 공작금, 가짜 주민등록증과 가짜 경찰 신분증 등을 갖고 출발했다.

 

1997년 7월 30일 오후 7시쯤 선박으로 남포항을 출발해 해군 작전 지역 밖인 공해상으로 남하, 제주도를 돌아 일본 대마도 부근 공해상에서 거제도로 접근했다. 남포항을 미국 첩보위성이 감시 중이었으나 당시 기술력으로는 공해상으로 나온 뒤 일반 어선과 섞이면 추적이 불가능했다. 무장 안내원 20명, 호송 안내원 3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선박은 8월 2일 밤 9시경 거제도 앞 공해상에서 5t 상당의 반잠수정을 내렸다. 당시 기술력으로는 스텔스 도료를 바른 이 반잠수정을 찾아낼 수 없었다. 거제도 해안에도 레이더기지가 있으나 12마일 밖에서부터는 완전잠수로 항해했기 때문에 레이더 기지에서 포착하지 못했다. 11시경 거제도 해안 500m 지점에서 두 사람은 수중침투장비로 갈아입은 채 반잠수정을 떠났고, 11시 30분경 경남 거제시 갈곶리 해안에 상륙했다.

 

당시 한국 방첩기관은 해상 침투에 대해서는 마음 놓고 있었다. 같은 해 2월 이한영 암살 사건이 발생했는데 합동수사본부는 암살자들의 입국 경로에 대해 적어도 육상, 해상은 아닐 것으로 보고 공항이나 항만 등 정식 경로로 당당하게 침투했을 것이라고 한참 착각하고 있었다.

 

침투 후 이들은 20일간 경주시,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드보크를 설치하고 현지 적응 훈련을 했으며 8월 23일에는 서울 구로동에 숙소를 마련했다.

 

이후 고정간첩 심정웅을 6번 만났다. 그는 서울지하철공사에 근무하던 고정간첩으로, 중학생 때부터 북한에 전향한 뒤 유사시 서울의 철도망과 지하철망을 파괴할 목적으로 40년 가까이 철도업무에 종사하며 잠복해 있던 자였다. 그에게 암호 해독법과 신형 무전기 사용 방법을 교육시켰으며, 조국 통일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김정일에게 바치는 충성의 편지를 받아내고 유사시 지하철을 마비시킬 방법을 받아냈다. 그것은 바로 서울지하철의 지하구간에 고이는 물을 퍼내어 개천가 및 한강 등지로 방류 조치하는 집수정 장치에 폭탄테러를 저지르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1997년 10월 21일 정OO씨(35)가 "남녀 2명이 찾아와 북한에서 왔으며 북으로 함께 가자"고 말했다며 간첩신고를 했다. 정씨는 재야단체인 '울산연합'의 간부로, 이들 2명을 안기부에서 보낸 함정으로 착각하고 자진 신고한 후 기자회견을 열어버린 것이다. 당시 안기부에서는 이런 사람을 보낸 적이 없었기에 북한 간첩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1997년 10월 27일 오전 11시 30분 울산 코리아나 호텔 커피숍에서 정씨를 재차 접촉하려던 남녀 2명을 현장에서 검거했다. 얼떨결에 애국자 된 정씨 당시 커피숍에 있던 30여명의 사람들은 모두 안기부 요원들로, 자리 잡고 있다가 일제히 권총을 빼들고 3명을 겨냥했다.

 

요원들이 덮치자 여 간첩은 "여보, 여보…"란 외마디 소리를 냈고, 남 간첩은 별다른 반항 없이 수갑을 받았다. 최정남과 강연정은 한국 현실에 어두워서인지, 정모 씨가 대대적으로 기자회견까지 했는데도 이를 모르고 다시 약속장소에 무방비로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 체포 후 이들의 증언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민주민족혁명당 사건이다.

 

여간첩 강연정은 수사 도중 독약 캡슐을 물고 자살했고, 최정남은 전향 이후 국방부 정보본부에서 북한 정보 분석업무를 맡고 있다는 NHK의 기사가 2006년도에 나온바 있다.

김현희가 최정남을 전향시키기 위해서 만난 적이 있다는 증언을 한 적도 있다. 이후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주성하는 최정남씨가 국군정보사령부에서 근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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