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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내곡동 52보병사단 211보병연대 예비군 훈련장 총기난사 사건

by hwani’s 2023. 1. 9.

목차

    내곡동 52보병사단 211보병연대 예비군 훈련장 총기난사 사건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당시 상황
    3. 조사 내용
    4. 목격자의 증언
    5. 인명피해 현황
    6. 허술한 사격 훈련 관리

    사건 개요

    2015년 5월 13일 오전 10시 46분 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제52보병사단 211보병연대 강동·송파 예비군 훈련장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

     

    6019부대 2대대에서 주관하는 동원훈련 영점사격 중 예비군 한 명이 뒤로 돌아서 K2 소총을 이용해 난사한 뒤 스스로 총을 쏴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고로 범인을 포함한 3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1993년 포 사격 미숙 등으로 인한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가 있었고 1994년 57사단 금곡예비군훈련장[4]에서 서울의 모 대학 학생예비군훈련 도중 오발사고(공포탄 탄창에 실탄 1발이 실수로 삽입)[5]로 예비군 한 명이 숨진 적이 있지만, 두 사건은 과실이기에 이후 대책마련을 통해 수습이 가능했던 반면 이 사건은 예비군 사상 최초의 총기 난사 사건이라서 매우 큰 파장이 일었다.

     

    범인은 불과 10초 가량의 시간 동안, 정확히 조준사격을 했으며, 총알은 단 9발만 이용했다.특별히 정해 놓은 사람 없이 무차별적으로 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조승희처럼 사람을 상대로 조준사격을 했다. 총탄 1발을 표적에 맞힌 후 7발로 2명 사망 2명 중상을 입혔고, 나머지 1발로는 자신의 머리를 쏴서 자살했다. 자신과 아무런 인간적인 연결 고리가 없는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살해한 무차별 살인, 묻지마 살인 사건이다.

    사건 당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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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는 2박3일 기간의 동원 예비군 훈련 중 2일차 영점사격훈련 도중 발생했다. 발생 시각은 오전 10시 37분경.

     

    사격 훈련 당시 최씨의 K-2 소총에 걸려 있어야 할 안전고리는 제대로 걸려 있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절차상 예비군이 직접 안전고리를 채우고 이를 조교가 흔들어 확인했어야 하나, 해당 조교는 최씨가 안전고리를 만지작거리는 것만 보고 채웠다고 판단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이 상태에서 최씨는 영점사격을 위해 총탄 10발이 든 탄창을 지급받아 표적을 향해 첫 발을 쏘고 다른 사로 사격이 모두 끝난 뒤 벌떡 일어나 뒤돌아서 총을 난사했는데, 다른 사로 사수들은 안전고리 때문에 총구를 돌려 반격할 수도, 엎드린 상태였기에 즉각 피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누군가 달려와 넘어뜨리고 총을 뺏거나 걷어차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 씨는 6개 사로(사격 구역) 가운데 1번 사로에 있었으며 뒤에 부사수로 서있던 예비군의 머리를 향해 1발을 조준사격한 후 사로에 엎드려서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던 예비군들을 향해 6발을 난사해 합계 7발을 예비군에게 사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예비군 4명이 총에 맞았다.

     

    총소리와, 상관의 '도망쳐라!'는 소리에 주위 예비군은 다 도망갔지만 도망치지 못하고 남은 A씨가 있었다. 최씨는 A씨를 조준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쏘지 않았고 곧 자신의 이마에 9번째 총탄을 쏘아 자살했다.

     

    남은 한 발은 탄창에 남아있었다고 군은 확인했다.

    조사 내용

    범인 최씨는 1992년생으로 육군 제5보병사단에서 복무하다가 2013년 병장 만기 전역했으며 현역 시절 중등도의 우울장애, 인터넷 과의존으로 관심병사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기사 B급 관심병사였기 때문에 GOP 근무에도 투입되었으나, 사고 발생 확률이 높은 부적합자로 판정되어 단 20일만 근무했다고 한다.

     

    가해자 최 모씨 이웃들에 따르면, 군대 갔다오기 전에는 그래도 정신이 괜찮았는데, 군대를 갔다오고 나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최씨의 이웃 주민인 김모(65)씨: "가끔 웃옷을 다 벗고 집 앞을 돌아다니고 소리도 빽빽 질렀다. 걸어다니는 것만 봐도 정신이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봤는데 휴대전화에 대고 화를 냈다. 그런 일(총기 난사)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인근에서 8년 동안 살았다는 20대 주민: "동네를 오고 가면서 혼자 욕설을 하며 걸어다니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몽롱한 눈빛으로 공원에서 같은 자리를 왔다갔다하는 모습도 봐서 평소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최씨 자택 인근에 사는 70대 할머니: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군대를 다녀온 뒤 이상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빨리 병원에 보내지 왜 안 보내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20년 전에 사망하고 어머니와 이모와 같이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형과 누나는 오래전 결혼해서 분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조사 도중에 가해자 최 모씨의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내일이 사격이다. 다 죽여버리겠다" "다 죽여버리고 자살하고 싶다"라고 언급하고 있어 사전 계획범죄임이 밝혀졌다. 유서에 따르면 GOP에서 군복무하는 중 가혹행위를 가한 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고 한다. 유서는 최모씨의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왔다.

     

    가해자 최 모씨는 희생자 2명과 같은 생활관을 사용했고, 부상자 2명은 다른 생활관에 있던 예비군이라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이들이 다퉜는지에 대해 조사하고 있지만 유서내용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해졌다.

    목격자의 증언

    가해자 최 모(23)씨 바로 곁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김 모(25)씨는 아버지를 통해 "총기사고를 내고 자살한 아이가 사격 전에 우리 아들과 같은 줄에 있었는데, 교관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고 순서를 바꿔 총을 쐈다네요"라고 증언했다.

    사고 목격자 신 모씨(29)는 당시 가해자 최 모씨(23)가 명찰이나 부대마크를 모두 뗀 상태였고 대기할 때부터 자기가 몇 사로로 들어가는지 옆 사람에게 물어본 후 제일 왼쪽 1사로로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또, "최씨가 실탄을 받은 후 조교의 도움도 없이 총에 탄창을 끼운 후 1발을 사격하고 이어 고개를 들어 2사로 부사수가 웃는 것을 봤다"며 "직후 사격자세에서 일어나 자기 뒤 부사수를 쏘고 나머지 사격 중인 2, 3, 5 사로에 들어가 있던 사수를 쐈다"고 전했다.

    인명피해 현황

    사건 당일인 2015년 5월 13일 밤 10시 기준. 의식이 없던 윤모씨가 끝내 숨져 사망자가 3명으로 늘었다. 나머지 2명도 중상이지만 이들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알려졌다. 사망자 3명은 각각 1사로 사수와 부사수. 3사로 사수였으며 부상자 2명은 2, 5사로 사수였다. 군인권센터 브리핑에 따르면 피해자 중 한 명인 안모씨가 군병원인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했다가 그날 밤 9시 자비로 치료해야 하는 신촌의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허술한 사격 훈련 관리

    예비군 동원훈련장에서 영점 사격을 할 때 실탄 3발을 지급해 25m 앞의 표적지를 조준해 사격하도록 하고 이어 실탄 6발을 지급해 측정사격을 하는 순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부대마다 실탄 지급 방식이 달라 어떤 훈련장은 실탄 10발을 지급하는 등 예비군 사격 훈련 총기 실탄 관리가 미흡했다는 의견이 나왔다. 사건이 일어난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실탄 10발을 지급했다고 한다.

     

    해당 예비군 훈련장은 20개의 사로(사격구역)이 있었는데, 사고 당시에는 20개 사로 모두 사용했던 걸로 알려졌다. 20개 사로를 사용했다면 각 사로마다 1명씩 기간병이 임무를 맡는 사격통제 요원 20명이 필요하다. FM대로 한다면 1개 사수마다, 1명의 사격통제요원이 배치되는 것이 맞지만, 현역부대이건, 예비군 훈련이건 인원 문제 때문에 안지켜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현역 기간병 6명만이 20개 사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1대1배치가 되었다면, 그리고 총기 결속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확인을 했다면, 다른 사수가 사격할때 사격을 하지 않는 이상 징후가 있을 때 바로 기간병이 개입을 했다면 이번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에 안타까운 사례다.

    예비군들이 그냥 훈련만 받고 조용히 나간다면 다행이지만, 단 한명이라도 그렇지 않다면 말 그대로 현역 본인들은 물론 다른 예비군들까지 사선에 내몰린다는 이야기. 좀 심하게 말해서 범인이 소총을 들고 일어설 그 시점에 바로 달려들어 그를 넘어뜨려 총기사고를 막을 사람이 있지 않은 이상 참사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