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3.8민주의거 한눈에 알아 보기

by hwani’s 2024. 1. 28.

목차

    3.8민주의거 한눈에 알아 보기

    목차
    1. 사건개요
    2. 사건내용
    3. 결의문

    사건개요

    1960년 3월 8일부터 3월 10일까지 일어난 3·8민주의거는 대전지역 고등학생들이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와 불법적 인권침해에 대항하여 자유와 정의, 민주화를 위해 불의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입니다. 이는 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이며 지역민주화운동의 효시로 그 역사적 교훈과 가치가 큽니다.

    대구의 2·28, 마산의 3·15와 함께 이 운동은 4.19 혁명의 단초이자 기폭제로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과 용기는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불타는 민주화 열망이 후대에도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사건내용

    1960년 3월 8일에 일어난 3·8민주의거는 야당 부통령 후보였던 장면 박사의 선거 연설회와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대전고등학교의 1,000여 명의 학생들이 경찰의 저지를 뚫고 독재 타도와 학원의 자유를 외치며 시민들의 환호 속에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원래는 대전시내 여러 고등학교 학생들이 연대하여 시위에 참가할 계획이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경찰의 저지를 받았고, 일부 학교는 학기말 시험으로 인해 시위가 봉쇄되었습니다. 또한, 9일에는 경찰이 4개 학교 학생대표 24명을 연행하여 구속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일에는 다시 대전상업고등학교 학생 600여 명이 시위를 감행하였습니다.

    결국, 당시 대전고등학교 교장과 학생들이 구속된 학생들을 석방하기 위해 경찰서장의 제안에 따라 다시는 시위를 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작성하면서 시위는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합하여 이를 3·8민주의거로 규정하게 되었습니다.

    3·8민주의거 시위 도중에는 100여 명의 학생이 연행, 구속되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경찰의 총격과 폭력에 시달렸으며, 교복, 교모, 신발, 소지품 등을 잃어버리는 등의 피해를 보았습니다. 또한, 논바닥에 가두어 놓은 인분통에 빠지거나 넘어져 다치는 경우 넘어져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학도호국단 간부들 중에는 한 달 이상을 피신한 사람도 있었고, 부상으로 인해 오랫동안 병원에 머무른 학생도 많았습니다. 경찰에 의해 수갑을 차고 곤봉 세례를 받으며 연행된 교사도 있었고, 경찰 방망이로 맞아 고막이 터지고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게 된 학생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러한 사실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대전일보, 중도일보 및 서울신문 등 전국의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게 알려졌습니다.

    3·8민주의거는 한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2000년대를 전후하여 주역들의 노력으로 그 역사적 의미가 점차 재조명되기 시작하였습니다. 2009년에는 대전광역시에서 '3·8민주의거' 기념일 제정 조례가 공포되었고, 2013년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공포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2017년에는 3·8민주의거기념일의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 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2018년에는 3·8민주의거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공포되었습니다. 이로서 3·8민주의거는 2·28대구민주운동, 3.15 의거, 4.19 혁명과 함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건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이정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결의문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는 우리들 대고 건아는 최근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우리의 뜻에 배치되는 충남도 당국과 학교의 처사에 대하여 그 잘못을 깨닫고 조속히 학원의 자유보장과 대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강력한 시정책을 강구할 것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학원의 정치도구화를 배격한다.
    자유로운 학생동태를 감시말라.
    서울신문 강제구독을 단호히 배격한다.[2]
    진리를 탐구하는 신성한 학원에서 여하한 사회적 세력의 침투를 용납할 수 없다.
    우리의 거사는 오로지 정의감과 자발적 의사에서 나온 것임을 밝힌다.
    오늘을 기하여 거행함은 다만 학생들의 사기가 왕성한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