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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월곡동 황금장 여관 모녀 토막 살인사건 – 성낙주 살인사건

by hwani’s 2022. 8. 4.

목차

    월곡동 황금장 여관 모녀 토막 살인사건 – 성낙주 살인사건

    성낙주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전개
         2-1. 성낙주와 피해자 전옥수와의 만남
    3. 범행
    4. 범인 체포

    사건 개요

    1994 년 8 월 14 일 , 서울특별시 성북구 월곡동에서 모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 .

    황금장 여관을 운영하던 동거녀 전옥수 ( 당시 49 세 ) 와 그녀의 중학생 딸 이향정 ( 당시 14 세 ) 을 살해한 후 시신을 매우 잔혹하게 훼손한 사건 .

    잔혹한 범행으로 동년 12월 21일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 사형 선고 이후 27 년이 흐른 현재까지 집행되지 않고 수감 중이다 .

    사건 전개

    성낙주와 피해자 전옥수와의 만남

    1993년 중순쯤 , 사건의 피해자인 전옥수가 그의 철학관을 찾아 인생 상담을 한 것을 계기로 서로 알게 되었다 . 그때 성낙주는 전옥수가 남편 없이 자신 명의로 된 여관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 전옥수가 " 허리가 안 좋다 " 고 하자 침과 뜸을 놔주고 지압시술을 해주다가 내연관계로 발전하였고 , 이내 동거까지 하게 되었다 . 성낙주는 아예 철학관을 접고 전옥수의 집으로 들어왔다 . 그러나 여관 주인장 전옥수는 무일푼으로 밥만 축내는 성낙주가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해서 마음에 안들어 하였고 , 시시건건 다툼이 잦아졌다 .

    범행

    이향정이 실종되기 하루 전인 8 월 13 일 저녁에 전옥수와 심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 그걸 지켜봤던 전옥수의 친딸 이향정 ( 당시 만 14 살 , 중 3) 이 성낙주에게 “ 요즘 엄마랑 자주 싸우는데 그만 괴롭히고 이젠 집에서 나가달라 ” 고 말했다 . 이향정한테 면박을 당한 성낙주는 크게 분노하여 , 이향정을 죽이기로 결심 . 다음 날 , 8 월 14 일 오전 5 시쯤 성낙주는 전옥수의 집을 찾아가 작은 방에서 혼자 자고 있던 이향정을 목졸림으로 살해했다 . 살해한 시신을 욕실로 옮겨 식칼로 목과 팔 , 다리 등을 36~38 차례로 토막낸것도 모자라 손가락 마디마디를 자른뒤 , 손끝의 지문을 없애고 , 피부 곳곳을 도려낸 뒤 , 안면의 피부조직을 벗겨내 벗겨낸 살가죽을 잘게 잘라 변기에 버리는 엽기적인 행각을 보였다 . 이후 살점들을 변기에 버린 것과 물청소로 인해 다음날 건물 물탱크가 바닥을 드러냈다고 한다 , 이후 토막난 시체는 검정 비닐봉지에 담은 후 종이상자에 나눠 담았다 . 그뒤 , 자신의 이복동생 성 모에게 전화를 걸어 “ 고사를 지낸 돼지머리를 버려야 하니 도와 달라 ” 고 했다 . 이에 속은 이복동생이 자신의 그레이스를 종이상자와 같이 타고 오후 1 시쯤 , 북한강휴게소 인근 야산에 이향정의 시신을 암매장했다 .

     

    성낙주는 살인을 은폐할 목적으로 미리 구매한 타자기로 이향정이 가출한 것처럼 메모를 작성 . 얼마 후 , 주인장 전옥수는 그 메모지를 보고 딸이 가출한 걸로 믿고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다 . 8 월 21 일 새벽 3 시쯤 , 성낙주는 여관 안내실에서 전옥수와 심하게 다퉜다 .

    그때 전옥수가 “ 재산도 없이 남자 구실도 못하는데 어떻게 당신을 믿고 사냐 ” 고 말하자 이에 격분하였고 , 오전 8 시 쯤 , 여관 107 호에서 잠자던 전옥수의 목을 졸라 살해 . 수술용 칼로 시신을 토막낸 후 살점을 도려내서 정화조에 버렸고 나머지 뼈 등은 라면상자 3 개에 나누어 담고 포장했다 .

     

    토막낸 시신이 든 상자는 여관 안내실 계단 밑에 숨겨뒀다가 다음 날 의붓형 김모 (50 세 ) 에도 " 고사지낸 돼지머리를 처리해야 되니 도와달라 " 고 거짓말을 한 뒤 , 이에 속은 의붓형이 자신의 렌터카를 이용해 고속도로 공사장에 포크레인을 동원해 암매장했다 .

    범인 체포

    두 모녀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성낙주는 자신이 여관주인인 마냥 행세하였다 . 전옥수의 친구 전영자가 “ 옥수 어디 갔느냐 ?” 고 전화하자 성낙주는 “ 가출한 딸을 위해 절에 불공 드리러갔다 .” 고 둘러댔다 . 이에 수상하게 여긴 전영자가 경찰에 전옥수의 실종신고를 하였고 , 수사에 착수한 서울종암경찰서 강력반이 실종신고 당일인 22 일 10 시에 모텔을 지키고 있던 성낙주를 연행하여 조사하였고 , 진술과정에서 그는 불리한 진술이 나올때마다 눈을 감고 불경을 외우거나 변명과 모르쇠 , 거짓말로 일관하여 수사에 혼선을 주었다 . 경찰이 " 전옥수가 불경을 드리러 간날 어디에 있었냐 " 고 물어봤으나 , 성낙주는 " 경동시장에서 장을 봤다 " 고 거짓말을 하였다 .

    하지만 성낙주의 짐보따리 안에서는 휴게소 영수증이 발견 . 더군다나 이향정이 남기고 간 것으로 알려진 쪽지에는 ' 옆 ' 을 ' 엽 ' 으로 잘못 표기한 글자들이 나왔고 , ' 중학교 3 학년인 이향정이 맞춤법을 틀릴 리가 없다 ' 고 판단한 형사들은 성낙주에게 " 당일 행적을 자술서에 쓰라 " 고 요구했다 . 이 과정에서 ' 옆 ' 과 ' 없 ' 을 쓰도록 유도한 결과 ' 옆 ' 을 ' 엽 ' 으로 , ' 없 ' 을 ' 업 ' 으로 표기한 바람에 , 쪽지는 성낙주가 쓴 가짜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

    이후 경동시장에서 수술용 메스를 구입한 것과 짐보따리에서 휴게소 영수증이 나온 증거들이 뒷받침하였고 , 결국 24 일 성낙주는 범행을 자백하였다 .

    8 월 29 일에 사건현장인 여관 앞에서 경찰과 주민 100 여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현장검증을 받았다 .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되고 1994 년 12 월 21 일 서울형사지법 합의 23 부 ( 김황식 부장판사 ) 는 검찰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 .

    이후 사형수가 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중이다 . 선고 후 1997 년까지 사형 집행이 실시되었지만 성낙주는 운 좋게 형집행을 피해서 지금도 복역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