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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축구 스토리

네덜란드 & 맨유의 레전드 스트라이커 득점제조기 '뤼트 판니스텔로이'

by hwani’s 2021. 1. 23.

목차

    네덜란드&맨유의 레전드 스트라이커 득점제조기 '뤼트 판니스텔로이'

    목차
    1. 선수소개
    2. 경기스타일
    3. 클럽경력

    선수소개

    - 뤼트 판니스텔로이 (Ruud van Nistelrooy)

    - 생년월일 : 1976년 7월 1일, 키 189cm

    - 네덜란드의 前 축구선수.

    - 과거에는 영어식 발음인 '루드 반 니스텔루이'로 적었으나, 2006년경에 네덜란드식 표준 표기를 적용하여 '뤼트 판니스텔로이'를 쓰기로 권고하며 언론이 바뀐 표기를 따랐기 때문에 현재는 바뀐 표기가 정착.

    - 2000년대 4대 스트라이커의 한 축, 네임밸류에 전혀 딸리지 않는 득점력을 지녔던, 당대를 대표할 수 있는 스트라이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레전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총 150골을 넣었으며, 이 150골은 219경기에서 뽑아낸 골로, 맨유 역사상 가장 높은 득점율. 참고로 맨유 통산 득점 1위는 웨인 루니.

    경기 스타일

    - 완벽한 위치 선정,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결정력, 군더더기 없는 퍼스트 터치, 장신을 활용한 제공권 장악 능력에 키에 비해 순간적인 돌파 속도가 빨라 전성기에는 일단 페널티박스 안으로 공을 넣어주기만 하면 발과 머리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골을 넣어주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선수.

    - 창조적 플레이도 가능한 완성형 포워드가 아니고 후방에서부터 볼 배급이 잘 이루어져야만 활약하는 인자기와 비슷한 유형의 선수.

    - 맨유에는 데이비드 베컴과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같은 크로스, 롱패스가 좋은 선수들이 많았기에 전성기 신체능력이 더해져 커리어 최고의 활약을 할 수 있었음.

    - 골 욕심이 매우 강했던 선수 였으며, 박스 안에서의 움직임이 천재적이었고, 경기가 시작되면 본인이 어떻게든 득점을 하는 것에 집중, 승패보다 자기가 득점을 했는지 안했는지를 중요시 여기는 선수.

    클럽경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서 전전하던 시기에도 이름을 날렸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것은 2001년 맨유에 입단했을 시기.

    - 좌측 긱스, 우측 베컴, 중앙 스콜스가 수시로 정교한 롱패스를 날리던 맨유의 스타일과 딱 맞았던 판니스텔로이는 데뷔 시즌부터 23골 기록, 다음 시즌에는 EPL 득점왕 등극. 그리고 2001/02, 2002/03, 2004/05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을 차지.

    - 2002/03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 이후의 세시즌은 속히들 말하는 맨유의 암흑기.

    - 맨유는 로이 킨, 데이비드 베컴등 주축 선수들과 퍼거슨 감독간의 불화가 심화되는 등 갈등이 심각. 맨유에게 있어선 최악의 시즌이 계속되고 있었으니 판니스텔로이의 이러한 득점력은 팬들에게 큰 위안. 이 시기 챔스에서 판니스텔로이의 득점력은 매우 뛰어났으며, 그 절정이던 2002/03 시즌은 단순한 득점왕 정도가 아니었는데, 9경기, 681분 출장, 12골을 기록. 이 시즌 챔스에서 필리포 인자기, 로이 마카이, 에르난 크레스포, 라울 곤살레스, 얀 콜레르 등이 각기 1,000분 전후로 뛰며 10골에서 8골을 기록. 10/11 시즌 득점왕인 리오넬 메시가 13경기 1050분 출전해서 12골. 아무리 반니에게 있어도 독보적인 '커리어 하이'라지만 이 정도면 거의 탈인간적 수준.

    - 04/05 시즌 조별 라운드 4차전에서는 스파르타 프라하를 상대로 혼자 4골을 득점. 한 경기에서 4골을 넣은 선수는 다도 프르쇼, 마르코 판바스턴, 필리포 인자기, 안드리 솁첸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있음. 5명이 공동 1등이었으나 2012년 리오넬 메시에 의해서 공동 2등이 됨.

    - 판니스텔로이 이후 EPL에서 두각을 나타낸 에레디비시 득점왕 출신 스트라이커가 없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이었지만, 루이스 수아레스가 13-14시즌 EPL 득점왕을 차지하며 오랜만에 네덜란드 리그 출신 EPL 득점왕이 탄생.

    - 2005/06 시즌에는 나이가 들어 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득점력은 죽지 않아 21골 기록. 허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폼이 떨어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리 없었고, 결국 벤치를 달구는 일이 잦자 자연스레 불화 역시 생겨남. 결국 2005/06 시즌과 2006 독일 월드컵이 끝난 후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

    레알 마드리드 CF

    - 레알 마드리드 이적 초기에는 떨어진 폼 때문에 엄청나게 욕을 먹었으나, 조금씩 폼을 끌어올리더니 결국 이적 첫 시즌에 25골을 터트리며 데뷔 시즌 피치치(득점왕)라는 말도 안되는 득점력을 보여줌.

    -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라리가까지 3개 리그 득점왕을 석권한 것.

    - 2007-08 시즌에도 여전한 활약상을 보여주었으며, 이에 2008년 1월에는 계약 기간을 2010년까지 연장. 비록 3월 달에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한동안 결장을 하게 되지만, 5월 7일 엘클라시코에서 교체 출전하여 복귀전에서 득점을 기록. 그렇게 리그에서 24경기 16골, 모든 대회 총합 33경기 20골을 기록하며 팀의 2연속 리그 우승에 기여.

    - 2008-09 시즌은 부상으로 일찍 접어야했던 시즌이다. 2008년 11월, 판니스텔로이는 관절 내시경 수술을 통해 오른쪽 무릎의 반월 상연골이 부분적으로 찢어져, 이를 복구하는 두 번째 수술 후 회복하는데 6달에서 9달 걸릴 것이라는 진단을 받아 잔여 경기에 나서지 못함.

    - 12경기 10골을 기록.

    - 2009년 8월 24일, 2009-10 시즌 리가 개막전 헤레스와의 경기에서 80분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교체로 들어가 시즌 첫 라 리가 경기를 치뤘고, 81분에 카림 벤제마의 골을 어시스트, 이어서 88분에 득점까지 기록. 그러나, 득점 도중 허벅지 부상, 이후 6주간의 결장 확정. 결국 팀 외 전력으로 분류되어 이후 기회를 잡지 못했으며, 자신이 레알의 구상에서 멀어진 것을 안 반니스텔로이는 독일 함부르크로 이적.

    함부르크 SV 이후 은퇴 까지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UEFA 유로 2008 이후 은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하고 싶다는 이유로 2009/10 겨울 이적시장 때 주전이 보장 되는 함부르크 SV 로 이적했지만 결국 2010년 월드컵에는 불참.

    - 2011년 함부르크 SV와 계약이 해지되어 자유계약선수가 된 그를 말라가 CF가 영입.

    - 2012년 여름에 말라가에서 현역 은퇴 선언.

    - 은퇴 이후 PSV 에인트호번 유소년팀 (네덜란드) 어시스턴트 매니저로 일하다가 신임 히딩크 감독의 지명에 따라 반니스텔로이가 네덜란드 국가대표 코치로 선임되며 처음 국가대표 코치 생활을 시작.

    - 2016년 6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직을 사퇴한 후 PSV의 유소년 팀 감독으로 임명될 것임이 공식 발표. 그 밖에 2군팀의 스트라이커도 지도도 같이 병행.

    - 함부르크에서 뛰던 시절에 손흥민이 빅리그에서 잘 적응하도록 여러가지로 도와주기도 했다는 말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