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부산 해운대구 모영광군 실종 사건
목차
1. 사건개요
2. 사건당일
3. 거짓신고와 경찰 대응
4. 사건이후
사건개요
2003년 10월 10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2동에 위치한 장산 성불사에서 소풍을 즐기던 모영광 군의 실종 사건은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아동 장기 실종 사건 중 하나입니다. 당시 모영광 군은 생후 26개월로 아직 어린 나이였습니다. 이 사건은 가끔 방송에서도 다뤄지며 여전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현재 아이의 행방은 알 수 없지만, 만약 어딘가에서 생존하고 있다면 모영광 군은 지금 22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건당일
2003년 10월 10일, 모영광 군의 누나 모예송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장산 성불사로 가을 소풍을 가기로 한 날, 영광 군은 소풍을 가기 싫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어머니 박혜숙 씨가 말했습니다. 이날은 영광 군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지 5일째였고, 어머니는 아이가 아직 어려서 소풍을 보내는 것이 걱정되어 보조교사에게 동행하고 싶다고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소풍 당일, 3명의 인솔 교사가 동행했고, 성불사를 견학 후 간식을 먹으려고 아이들을 불러모았지만, 영광 군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찰 주변을 수색했지만, 영광 군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후 3시에 인솔 교사들은 영광 군의 집에 전화를 걸어 아이가 없어졌음을 알렸고, 영광 군의 부모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처음에는 길을 잃어 헤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되었지만, 사찰 주변과 인근 동네를 수소문해도 영광 군의 행방은 알 수 없었습니다.
모영광 친누나의 최면수사 결과와 어린이집 동창의 증언에 따르면, 영광 군은 간식을 먹으러 모여있던 아이들과 함께 있었으며, 보조교사가 식수를 뜨러 갔을 때 화장실로 간 영광 군을 보았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모영광 군이 물을 뜨러 가는 보조교사를 따라갔을 가능성이 있으며, 보조교사가 모영광 군을 따라오는 것을 알지 못해 빨리 걸어가 버렸기 때문에 영광 군이 목표물을 잃어버리고 혼자 남게 되었고, 그 사이에 납치될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경찰은 해당 보조교사를 조사했지만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교수도 해당 보조교사가 범인일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았습니다. 그녀는 당시 부산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실종 사건 발생일은 해당 어린이집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계획 범죄를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범행 동기가 없으며, 영광 군 가족에게 금품 요구도 없었고, 가족 구성원들을 포함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남의 아이를 납치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 보조교사는 사찰을 소풍 장소로 제안한 주요 인물이었고, 사건 발생 시각에 화장실에 갔다는 점 때문에 오랫동안 범인으로 의심받았으며, 이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과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한 당시 성불사에는 아들을 낳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했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들을 낳지 못하자 다른 사람의 아이를 유괴한 것이 아닌지 의심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사찰 신도들을 조사한 결과 아무런 혐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기록은 수기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현재 사찰에서 그 당시의 문서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실종자 찾기 방송 이후, 가족들은 영광 군의 목소리로 의문의 전화를 받았으며, 전화는 해운대구 반송동에 있는 한 공중전화로 추적되었습니다. 경찰은 해당 위치를 수색했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공중전화 수화기의 표면이 울퉁불퉁하여 지문을 채취하기 어려웠고, 수색은 중단되었습니다. 가족들은 현재까지도 영광 군으로 추정되는 목소리인 "아빠!"의 녹음본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목소리 분석 결과, 영광 군의 목소리와 공중전화 속 목소리의 일치율은 77%로 나왔습니다. 이는 동일인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90% 이상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과는 구분되는 수치입니다.
거짓신고와 경찰 대응
영광 군의 가족들은 아이의 생사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이 중에는 거짓 신고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거짓 신고로 인해 영광 군의 부모뿐만 아니라 조부모까지도 전국을 돌아다녔으나, 받은 전화는 모두 허위 신고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영광이를 보았다", "○○ 백화점에서 영광이와 똑같이 생긴 아이를 보았다" 등의 거짓 제보를 받거나, 가짜 납치범이 되어 현금으로 10억 원을 주면 영광이를 돌려준다고 주장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허위 신고로 인해 가족들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또한, 공권력의 대응이 무력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광 군의 어머니 박혜숙 씨의 증언에 따르면, 영광 군이 성불사에서 실종된 후 이틀 후에 동래구에서 영광 군과 똑 닮은 아이가 울면서 골목을 배회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박혜숙 씨가 순찰차를 요청했지만 경찰은 "우리 관할 구역이 아니라서 순찰차를 보내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동임시보호소와 경찰 간 데이터베이스 연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영광 군이 보호센터에 맡겨져 있다고 해도 경찰은 이 사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아동 실종에 관한 한국의 시스템이 그 당시에는 후진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영광 군을 찾기 위해 동원된 경찰 인력 중 한 명이 십수 년이 지난 후에 영광 군의 어머니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여 수색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이로 보아 수색 작업은 깊게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경찰 측이 밝힌 부실 수사의 이유는 모영광 군이 실종된 장소가 종교 시설인 사찰이기 때문에 수사에 참여할 경우 신도들의 반발을 사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졌습니다. 또한 장산 성불사는 신도 교적부만 3,500장 정도로 크기가 큰 사찰이었습니다.
사건이후
박혜숙 씨는 이후 실종아동지킴연대의 대표를 맡아 실종 아동을 지원할 수 있는 관련법 제정과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녀는 "실종 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에 예외조항이 필요하다. 실종 아동을 찾기 위한 목적일 경우에는 유전자(DNA) 검사 허용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아들이 한국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를 데려간 사람이 새로운 출생신고를 해서 다른 이름으로 키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병역판정검사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신병훈련소에 실종아동전단지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관련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답변만을 반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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