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울대 성폭력 대책위 사건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발단
3. 사건 경과
3-1. '성폭력 대책위'의 운영
3-2. 사건 공개
3-3. 반응
4. 평가
사건 개요
'서울대 성폭력 대책위 사건'이라 함은 언론에는 '서울대 담배녀 사건',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 사퇴 사건' 등의 명칭으로 알려진 사건으로, 서울대 인문대 여학생 A씨가 유수진 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과 사회대 남학생 B씨를 '성폭력'으로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후 이른바 '사노위 성폭력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성폭력 대책위')로 이름 지어진 단체를 만들어 그 안에서 소속 단위들과 당사자들 간에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
본 사건이 발생함으로 인하여 기존에 운동권, 특히 여성주의와 관련하여 '반성폭력 운동'을 진행하던 이들 내부에서도 '성폭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정립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음이 드러났으며,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성폭력의 정의를 무한히 확장시키던 것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가시화되었다. 또한, 서울대학교 학생 사회 내부에서 운동권과 페미니즘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극도로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 발단
2011년 3월, 서울대학교 인문대 소속 여학생인 A는 교제 중이었던 서울대 사회대 소속 남학생인 B에게 세미나 도중의 쉬는 시간에 이별 통보를 받았다. B는 이별을 통보하면서 줄담배를 피웠는데, A는 B의 이런 행동이 B의 남성성을 부각시켜 자신을 위축시키려는 행위이며, 남녀간의 특별하고 소중한 관계를 이렇게나 무성의하게 끊어버리는 것은 성폭력이라고 주장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별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줄담배를 피운 것은 남성권력으로 자신을 위압해 발언을 막은 젠더폭력이며, 한 달도 안되어 헤어질 정도로 가벼운 마음인줄 알았으면 연애나 스킨십을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이는 섹슈얼리티 폭력이라고 하였다. 더 나아가 인문대 여학생 A는 당시 사회대 학생회장 유수진(C)에게 사회대 소속 남학생인 B를 사회대 반성폭력 학생회칙의 규정에 따라 제재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유수진(C)씨는 당시, 이는 개인사적인 일로 보인다고 말하며 이를 반려하였고, 이 와중에 A씨와의 언쟁이 격해지기도 하였다. A씨는 유수진(C)씨를 2차 가해자로 지목하고, 유수진(C)씨가 사회대 학생회장을 사퇴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한편 "개인사적인 일로 보인다"는 의견은 유수진씨 본인의 증언에 따른 내용이며, 증언의 출처는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학생회장 사퇴 사유서. 여기에 업로드 되어 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이 당시 정확한 대화내용은 '조사한계' 영역이라고 말하였다. 이는 즉, 대화의 쌍방의 증언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A씨는 진상조사 기간 중 조사에 줄곧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거나 잠적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당시, 활동하던 단체 내부에서 이별 통보에 관하여 얘기하였던 적이 있었으며, 고발하려는 내용에 대하여도 단체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한 바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인터넷을 통하여 유수진씨와 B가 활동하던 단체의 중앙조직에서 알게 되어 이들에게 알리게 되자, A와 유수진씨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원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별 통보 상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언쟁을 벌이게 되었다.
당시, 유수진씨는 이 상황을 성폭력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후 유수진씨와 B가 활동하던 단체에서도 유수진씨의 규정처럼 이 상황은 성폭력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으나, A씨가 이를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할 것을 제안하지만 A씨는 이 제안을 거절한다.
사건 경과
A씨는 B씨에게 겹치는 수업에 대한 수강 취소를 요구하거나 B씨와 유수진씨가 속한 단체에 2차 가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등의 행동을 이어간다. 이에 B씨와 유수진씨가 속한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던 일부 학생이 이러한 상황에 대한 불평을 트위터에 쏟아놓기에 이르고 A씨는 이에 '관악 여성주의 자치모임 공간'에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하여 얘기하기에 이른다.
참고로,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성폭력 사건에서는 가해의 종류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사건 그 자체인 1차 가해, 다른 하나는 사건에 대하여 피해당사자가 받는 고통을 증폭시키는 2차 가해이다. 대표적인 2차 가해로는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네가 처신을 잘못해서 그런 것이다.", "네가 먼저 가해자에게 꼬리를 쳐서 그런 것이다."라며 어처구니 없는 비난을 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이러한 경우 피해자는 사회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나 2차 가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명확한 합의가 없다고 보아야하는데, 이러한 '명확한 정의의 부재'는 본 항목에 기재된 사건을 헬게이트로 몰아가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피해자중심주의'라고 불리는 여성주의 운동 진영이 주창한 성폭력 사건의 처리 지침은 종래의 남성중심주의적 사회가 성폭력을 규정지었을 때 벌어진 일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편견에 시달리고 ‘피해자다움’을 강요받아야 했으며 약간의 기억상 부정확함만 있어도 쉽게 거짓말로 매도당했다. 이렇게 가해자가 유리하던 것을 바꾸어 피해자의 시각을 중심으로 사건이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여성주의 운동의 주장이며, 이는 성인지감수성과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자멋대로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누군가가 피해자라고 주장하기만 하면 그 사람의 말만 듣는 '피해자 멋대로'의 상황을 불러일으키기도 쉽기 때문이다. 피해자중심주의가 정확히 무엇인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으며, '2차 가해'라는 용어가 가지는 모호함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트위터 사건'이 일어나자 유수진씨는 사회대 학생회장으로서의 활동에 크게 제약을 받기에 이른다. A는 '유수진은 성폭력 2차 가해자로 성폭력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는 명예남성'이라고 비난하며 '2차, 3차 가해를 막는다'는 미명 아래 사건의 공개를 거부한 채로 유수진 씨를 비방하였고, 여성주의 활동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져 사회대 학생회의 활동에 보이콧을 하려는 움직임까지 일어났던 것이다.
당시에는 어떻게 잘 넘어갔다고 하나, 유수진씨 본인은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이후 사회대 학생회 운영위원회에 제출한 학생회장 사퇴사유서에서 호소하고 있다.
'성폭력 대책위'의 운영
'성폭력 대책위'의 운영은 초동모임-1차 테이블의 사전 테이블-1차 테이블-2차 테이블의 사전 테이블-2차 테이블로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A씨와 A씨의 소속단체인 서울대학생행진과 '관악 여성주의 자치 모임 공간' 측의 인사들의 유수진씨, B씨에 대한 질책과 비난이 난무했다고 한다. 당시 공간은 학내 유일의 여성주의 단체로서 사회자 자리를 맡았는데, 애당초 A씨와 친분이 있는 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중립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또한 이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오용하여 “2차 피해/가해는...‘객관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자기 행동을 정당화했다. 설령 그들의 말대로 2차 가해에 대한 ‘객관적’ 정의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사회자이자 준 중재역으로서 개별 사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책임을 방기하고 모든 것을 2차 가해로 몰고 있는 A씨의 편만을 든 것이다. 이런 와중에 A씨는 본인이 작성한 '요구안' 문서에서도 욕설을 사용하는 등 제약이라고는 없이 행동했으며, 당연히 유수진씨와 B씨에게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다.
유수진씨와 B씨는 이 대책위가 운영되기 이전에도, 그리고 운영되기 시작한 뒤에도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계속하였으며 운영된 이후에는 '테이블'(즉,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에 따라 사과문을 또 썼지만 계속해서 인신공격에 노출되었다. 대책위원회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명목 하에 "피해자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논리로 A의 만행을 모두 묵인했다. 심지어는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나갔던 집회에서 관악 여성주의 단체 학생들에 의해 학생회장인 유수진씨가 '공간 분리'라는 미명하에 쫓겨나는 상황까지 발행하고 말았다. 결국 유수진 씨는 스트레스 속에서 우울증과 각종 신체적 질환을 견디다 못해 이 사건을 총학생회에 제소하였으나 제대로 조치를 받지 못하자 결국은 공개하면서 사회대 학생회장 직위에서 자진 사퇴하고야 만다.
사건 공개
사건 공개 이후, 2012년 12월 22일에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특별기구로 (가칭)'사회대 유수진 학우가 제소한 데 대한 대책위원회'(이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산하 특별기구 "성폭력 대책위 사건" 특별대책위원회'로 명칭을 확정짓는다)를 유수진씨에 대한 지지모임과 행진, 공간, 사노위를 포함하여 구성하고 진상조사 및 해결 작업에 착수하였다. 특별대책위는 이후 2013년 3월 25일에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 이후 5월 9일에 이 사건과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그리고 진상조사 결과와 토론회 결과를 토대로 피해자인 유수진씨와 B씨에 대하여 각 단위들이 사과하고 피해를 보상할 것을 지시하였다.
반응
당장 2012년말에 치러진 55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이 사건은 큰 영향을 끼쳤다. 선거참여패널인 '관악신용평가정보'가 행진 계열인 '터닝포인트' 선본에 이 사건과 관련하여 질의를 한 것 뿐 아니라, 학내 여론이 이미 이들에 대하여 경악과 냉소, 경멸로 가득했다. 결국 투표율 미달로 선거 무산. 비슷한 시기에 치러진 사회대 학생회 선거에서도 후보가 피해자 유수진씨와 같은 사노위 계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저 투표율로 선거 무산되었다. 운동권 자체에 대한 경멸과 냉소가 퍼져 있었던 것이다. 다음해 총학 재선거에는 2012년말에는 가장 약해보였던 비권 선본이 단선 출마해서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사건이 공개되었을 때 스누라이프를 비롯한 학내 여론은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유수진 씨에 대한 동정 여론과 A와 학내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 조롱이 극에 달했고 이 과정에서 A씨에 대한 신상털이 등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인문대 학생회장 역시 스스로가 성폭력 가해자라면서 사퇴해서 둘이 연관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으나 둘은 무관한 일이었다.
평가
이 문제는 단순히 연애 문제를 페미니즘에 따라 해석한 학생들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A와 B는 서로 다른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고, 2009년 이후로 이 두 단체 사이에서 지속적인 충돌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단체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 문제를 키운 측면이 크다. 바꿔 말하자면 적대 단체라는 이유로 개인간의 연애문제를 의도적으로 확대시켜 비방의 도구로 삼은 A와 A가 소속되어 있는 단체가 심각한 사고를 저지른 것.
무엇보다도 가장 큰 사고를 저지른 건 사회자로 있었던 '공간'이었다. 이들은 이후 진상조사위와 특별대책위가 활동하며 자신들에게 책임을 추궁하자 '우리는 중재역이 아니었다'라며 책임을 회피하였으며, 진상조사 이후 특별대책위가 주최한 본 사건 및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공개토론회에도 발제문 하나 던져놓고 불참해버리는 등 상당히 비협조적인 자세를 줄곧 견지하여 결국 서울대 총학생회가 그들의 행태를 공식적으로 비판하는 상황까지 초래했다. 이들이 정식으로 ‘중재역’으로 초빙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이들이 학내 유일의 여성주의 단체로서 대립하는 두 단체의 입장을 조정하고 여성주의적 자문을 하기를 기대하고 사회자로 초빙했다는 것은 사실상 참가자 전원이 인지하고 있었다.
서울대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의 요람에서 일어난 상식 이하의 사건이었던지라 사회적 파장과 이슈를 몰고 왔다. 일반인들이 처음 이 사건에 대한 내용을 접하면 '그게 무슨 성폭력이냐?'라는 반응을 가장 먼저 보였고, 다음으로 '그런데 그 사건이 서울대에서 일어났다고? 그 서울대?'라는 의문이 이어졌다. 게다가 유시민의 딸 유수진이 사건의 중심인물 중 한 명으로 등장하고 학생회장직을 사퇴했다는 이슈가 덧붙여지며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사회 전반으로 성범죄에 대한 각성과 규탄이 이어지던 분위기 속에서 성범죄에 대한 대중의 여론은 매우 냉혹했지만, 이 사건의 줄담배 행위에 성폭력 딱지를 붙이는 것에 다수의 사람은 반감을 드러내며 동의하지 않았다. 학교의 내규와 사회의 상식이 조금씩 어긋날 수는 있으나 이 사건처럼 범주를 넘어선 비상식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대중에게 심각한 반감을 샀다.
서울대에 들어갈 정도의 지식인이 학생회칙의 모호함을 이용해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상대를 공격한 행태를 통해 지성이 이성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일부 머리가 좋은 인간들이 자신의 지성을 야만인이 휘두르는 몽둥이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대한민국 사건사고 > 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희망원 학대 감금 폭력 및 비리 사건 (0) | 2023.01.07 |
---|---|
롯데마트 시각장애인 안내견 출입 거부 사건 (0) | 2023.01.05 |
2008년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 방화 사건 (0) | 2023.01.05 |
1996년 1월 가수 김광석 사망 사건 (0) | 2023.01.03 |
나영석 정유미 불륜 가짜뉴스 사건 (0) | 2023.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