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 - 서울목포파 맘보파 사건
목차
1. 사건개요
2. 사건내용
3. 사건수사
사건개요
1986년 8월 14일,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대형 룸살롱인 '서진회관'에서 발생한 집단 살인 사건은 사회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목포와 신안 출신의 조직폭력배들 간의 사소한 시비가 크게 번져서 일어난 것으로, 반대파 조직원 4명이 살해되었습니다.
가해자인 '서울목포파'에는 두목인 정요섭(당시 41세), 부두목인 장진석(당시 26세), 행동대장인 김동술(당시 23세, 사형), 김승길(당시 27세), 유원희, 박영진(당시 28세), 고금석(당시 22세, 사형), 양회룡, 강정휴, 홍성규, 김경만 등이 있었습니다.
피해자인 '맘보파'에는 오재홍, 천종갑, 고용수(사망), 조원섭(사망), 송재익(사망), 장경식(사망), 이왕규, 차권 등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또한 이 사건이 발생한 '서진회관'이 강남구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당시 강남이 이미 부유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범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주범 2명은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사건내용
1986년 8월 14일 오후 10시 30분, 서울 강남의 대형 룸살롱 '서진회관' 17호실에서는 목포와 신안 출신의 조직폭력배인 '맘보파' 조직원 7명이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는 교통사고로 실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있던 조직원 고용수가 광복절 특사로 석방된 것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옆방인 16호실에서는 '서울 목포파'라고 자칭하는 8명의 조직원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맘보파 일행은 술자리가 가열되면서 방이 좁다며 종업원에게 방을 바꿔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광복절 전날로 모든 방이 다 차 있어 종업원은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불쾌해한 맘보파 일행 중 한 명이 종업원을 폭행하였습니다. 이 상황을 목격한 서울 목포파 조직원은 종업원의 상황을 알고 분노하였습니다.
그러나 맘보파 일행이 실전 경험이 많고 강한 상대임을 알고 있던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주저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에 동의 없이 들어온 맘보파 일행이 동생 같은 종업원을 폭행하는 것을 보고 분노하였지만, 상대방이 강한 상대임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의 행동을 주저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사건은 결국 희대의 패싸움 집단 살인 사건으로 번져나갔습니다.
서울 목포파의 조직원들은 갑론을박과 계획, 작전을 거듭한 끝에, 종업원들을 통해 맘보파 일행이 무기 없이 술에 만취해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들은 칼과 야구방망이를 준비하였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맘보파 일행이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특히 칼을 잘 다루는 맘보파의 행동대장 조원섭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마음을 다잡고 17호실로 난입하였습니다. 그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칼과 방망이를 휘두르며 공격하였고, 특히 조원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습니다. 김동술은 생선회칼로 송재익과 고용수를 공격하였고, 고금석은 줄칼로 조원섭과 장경식을 공격하여 즉사시켰습니다. 이 공격으로 맘보파 조직원 7명 중 4명이 즉사하였고, 나머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이후 4명의 시신을 차에 싣고 동작구 사당동의 한 정형외과 앞에 두고 "교통사고 환자요!"라고 소리치며 도망치는 방식으로 현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핵심 멤버 4명이 사망한 맘보파는 크게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사건은 결국 대대적인 패싸움 집단 살인 사건으로 번져나갔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사건의 파장이 예상보다 커지고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자 하나 둘 자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실제 사건 현장에 있지 않았거나 관련이 없는 인물들을 위장 자수하게 하여 수사에 혼선을 주는 등의 꼼수도 사용되었습니다. 주범인 장진석과 김동술은 전북 임실군에 있는 한 저수지의 외딴 섬에서 낚시꾼으로 위장해 은둔하였습니다.
하지만 판결문에 따르면, 사건의 과정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양측이 홀에서 대치하던 중 고금석이 먼저 조원섭을 찔렀고, 조원섭과 송재익은 화장실로, 고용수와 장경식은 17호 방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김동술과 고금석이 주도하여 먼저 화장실에서 조원섭과 송재익을 살해하고, 그 다음 17호 방으로 이동해 고용수와 장경식을 살해하였습니다. 피해를 입은 맘보파 조직원은 이왕규, 차권, 오재홍 등 총 3명이었으며, 그들 중 이왕규는 도망쳤고, 차권은 악사 대기실에 숨어서 살아남았고, 오재홍은 일 때문에 먼저 자리를 떠나 피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임실 저수지에 숨어 있는 김동술과 장진석을 제외하고는 고금석 등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자수하였습니다.
사건수사
'서진 룸살롱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데 대해 경찰은 이 사건의 실체와 가담자들을 모두 밝혀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위장 자수자들을 걸러내고 실제 가담자들을 파악한 경찰은 도친 주범인 장진석과 김동술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정보망을 동원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위치를 알아낸 경찰은 무술에 능한 형사 5명을 현장에 급파했습니다.
장진석과 김동술은 쉽게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형사들의 접근을 눈치채고 칼과 낚시 도구 등 들고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경찰의 포위망을 피해갈 수 없었고, 검거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서진 룸살롱 사건'의 주범들은 모두 검거되었고, 사건의 전말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서진 룸살롱 사건'의 주범들인 장진석과 김동술이 서울로 압송되었을 때, TV 카메라 앞에서도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은 전국민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허세는 재판에서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울면서 죽을 죄를 저질렀다며 빈정거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총 12명이 구속되었고, 1986년 12월 26일 1심에서 고금석과 장진석, 김동술, 김승길에게 사형, 박영진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습니다. 1987년 5월 2일 항소심에서는 김승길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사형을 면했고, 박영진은 무기징역에서 다시 20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 10월 13일 대법원에서 장진석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결국 직접 살인한 주범인 김동술과 고금석은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사형이 확정된 후에도 감옥에서 외롭게 지내야 했습니다.
김동술과 고금석은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난 1989년 8월 4일에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김동술은 처형되기 전에 천주교로 개종하였으며, 그는 담담한 모습으로 사형을 맞았습니다. 그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 깨끗이 몸을 닦고 양치를 오래하였습니다. 그는 사형이 집행되는 날 아침에 집행장에 들어가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교화위원 문장식 목사는 '폭력 세계의 의리를 끊지 못하고 어떻게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형이 집행되는 도중에 형구가 고장나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집행이 45분 동안 지연되었고, 김동술은 그 시간 동안 계속 기도하며 떨었습니다. 사형이 다시 집행되자 김동술은 죽었습니다.
한편, 징역 20년을 선고은 박영진은 2006년에 출소하고 2010년에 52세의 나이로 장진석의 누나와 결혼하였습니다. 장진석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수감 생활을 하다가 2017년 12월 22일에 특별사면되어 순천교도소에서 31년 만에 57세의 나이로 출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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