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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천안함 피격 사건

by hwani’s 2022. 12. 9.

목차

    천안함 피격 사건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고원인 (공식 발표 기준)
    3. 구조 및 인양 과정과 그 전개
    4. 북한의 반응
    5. 사후 처리

    사건 개요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대한민국 백령도 남서쪽 약 1km 지점에서 포항급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이 초계임무 수행도중 북한 해군 잠수정의 어뢰에 공격당해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한 사건.

     

    피격 이후, 인근 지역에서 작전 중이던 포항급 초계함인 PCC-778 속초함과 백령도 등지의 참수리급 고속정, 해경 함정에 의해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되었으며 46명이 전사하였다.

     

    이후 수색작전 중 3월 30일 한주호 준위가 잠수병으로 순직하고, 4월 3일 천안함 수색을 돕던 쌍끌이 민간어선 98금양호가 상선과 충돌해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되어 직/간접적으로 10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하였다.

     

    천안함은 제1연평해전에 참가했던 함선이기도 하며, 실종·사망한 승조원 46명 중에는 제2연평해전에 참전해 부상을 입었던 박경수 중사도 포함되어 있다.

     

    4월 15일 해저에 있던 천안함의 함미가 인양되었으며 4월 24일에는 함수가 인양되었다.

     

    5월 20일 대한민국 국방부는 침몰 원인에 대해 민군합동조사단 및 국제조사단의 조사를 거쳐 '북한 연어급 잠수함의 어뢰 공격'임을 확인하고 북한을 규탄하였다.

    북한군에 대한 초계 대응에 실패하여 북한 잠수정이 남한의 바다에 침투하는 것을 허용해버렸고, 그 결과 어뢰 공격을 당해 침몰했다는 것이다.

    사고 원인 (공식 발표 기준)

    2010년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은 가스터빈실 좌현 하단부에서 음향자장복합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어뢰 폭발로 발생된 충격파로 인하여, 선체의 용골이 함정 건조 당시와 비교하여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고, 외판은 급격하게 꺾이고 선체에는 파단된 부분이 있었다.

     

    주갑판은 가스터빈실 내 장비의 정비를 위한 대형 개구부 주위를 중심으로 파단되었고, 좌현측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으며, 절단된 가스터빈실 격벽은 크게 훼손되고 변형되었고, 함수, 함미의 선저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꺾여 있었다.

     

    함정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함안정기에 나타난 강력한 압력흔적, 선저부분의 수압 및 버블 흔적, 열흔적이 없는 전선의 절단 등은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 효과가 침몰의 원인임을 알려주고 있다.

     

    생존자들은 거의 동시적인 폭발음을 1~2회 들었으며,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는 진술과, 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간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 기둥을 관측했다는 진술내용 등이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현상과 일치하였다. 또한 사체검안 결과 파편상과 화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골절과 열창 등이 관찰되는 등 충격파 및 버블 효과의 현상과 일치하였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분석한 결과, 지진파는 4개소에서 진도 1.5 규모로 감지되었으며, 공중음파는 11개소에서 1.1초 간격으로 2회 감지되었다. 지진파와 공중음파는 동일 폭발원이었으며, 이것은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한다.

     

    몇 차례에 걸친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수심 약 6~9m,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대략 좌현 3미터의 위치에서 총 폭발량 200~30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조사단이 백령도 근해 조류를 분석해 본 결과, 어뢰를 활용한 공격에 제한을 받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리고 수사가 진행되던 중, 합동조사단은 침몰해역에서 어뢰로 확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로 어뢰의 추진동력부인 프로펠러를 포함한 추진모터와 조종장치 등을 수거하였다.

     

    이 증거물은 북한이 해외로 수출할 목적으로 배포한 어뢰 소개자료의 설계도에 명시된 크기와 형태가 일치하였으며, 추진부 뒷부분 안쪽에 "1번"이라는 한글표기는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 표기방법과도 일치한다.

     

    이상과 같이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는 점은 공식 조사에 참여한 미국·영국·스웨덴·호주 4개국 전문가들이 모두 동의하였다.

     

    이후 2013년 신영식 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 초빙교수는 별도의 수중폭발 실험으로 어뢰의 폭발로 인한 버블 진동이 천안함 고유진동수와 맞아 공진을 일으키면서 선체를 절단, 침몰시킬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구조 및 인양 과정과 그 전개

    천안함이 피격되고 함장인 최원일 중령은 함장실에 갇혔다. 이 상황에서 부장 김덕원 소령, 작전관 박연수 대위 등 부하 장교들이 함장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최원일 함장을 구출했다. 함장실을 빠져나온 함장은 남은 승조원들을 이용해 구출조를 편성, 침몰하지 않고 떠 있던 함수 여러 곳을 수색해 함수에 남아 있던 승조원 59명 중 1명을 제외한 58명을 구출, 함 외로 올라와 구조를 기다렸다. 이후 도착한 해경 경비정에 차례로 승함, 함장이 마지막으로 퇴함하면서 이때까지 살아 남아있던 승조원 전원이 구조되었다.

     

    피격당한 부위의 특성 상 장교는 전원 구조되었다. 침몰된 함수는 주로 병과 부사관이 생활하는 곳이었으며 장교가 생활하는 곳은 함장실의 해치가 찌그러진 것을 제외하면 비교적 멀쩡했다.

     

    국방부는, 사건 당일부터, 실종된 함미(배의 뒷부분)의 위치를 찾기 위해 수색을 펼쳤다, 하지만 그 시도가 실패하여, 해경과 지역 어선단의 도움을 요청했고, 해경은 사건 다음 날인 27일 소나를 이용, 함미로 추정되는 물체를 식별하여, 해군에게 보고를 했다. 하지만 해군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보고를 무시한 채 다음 날, 28일 어선의 음파탐지기에 탐지된 해경이 식별한 것과 동일한 위치에서의 보고를 받고, 그제서야 출동을 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최소 69시간 이내에 함미를 찾아야 한다고 했던 당시 국방부의 입장과도 정면 배치되는 행동이었다. 당연히 언론들은 그 이유를 알고자 했으나, 국방부에서는 해경이 해군 측에 함미좌표를 전달했다는 내용의 사실조차도 증명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천안함 사태에 두고 두고 의혹거리가 되었다.

     

    해군 해난구조대, 해군 UDT/SEAL, 육군 특전사 및 중앙 119 특수구조대의 잠수요원들도 수중 수색,구조 작업에 투입되었다.

    북한의 반응

    북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는 대변인 성명을 발표해 남한의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를 '날조극'이라고 주장하면서 국방위 검열단을 남한에 파견하겠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방송이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주장은 김신조 사건이나 KAL기 폭파사건에서도 자신들이 아니라며 주장했던 사실로 보아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

    10월 15일 김정남이 김정일에게 이 사건으로 항의를 했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따르면 북한 내의 무리한 화폐계획을 실패한 김정은의 지휘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한다. 김정일은 이에 대해 그냥 묵인하고 있었다고. 또한 북한은 자신들이 연어급 잠수정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어뢰에 손글씨로 된 '1번' 표기 대신 기계로 인쇄한 '호'라는 표기를 하며 어뢰 설계도면 책자를 배포한 적이 없고, 다국적 TF 참여국가가 친미국가로만 구성되어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국방부는 2004년 촬영된 구글어스 사진과 특정 중동국가에서의 북한이 수출한 130t급 잠수함에서의 중어뢰 운용실례, 북한의 무역회사에서 작성해 제3국에 제공한 어뢰설계도가 포함된 무기소개 책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고, 다국적 TF 참여국가 중 하나인 스웨덴은 중립국이라고 반박하였다.

     

    한편 북한 정찰총국이 2010년 천안함을 공격하기 직전 우리 기상청 홈페이지에 300여 회 접속해 '전문가용 일기도'를 집중 열람한 사실이 통일부 문건을 통해 밝혀졌다. 이 주장은 2015년 3월에 나왔다가 출처 등이 확실치 않아 무시되었는데 이번에는 통일부가 2011년 작성한 문서를 통해 내용이 확인된 상태다. 본 건에 대해 현 정부의 통일부에서는 '특별히 확인해 드릴 사항이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사후처리

    피격 2달 후 정부는 북한에 대해 5.24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해군의 체질을 변화시킨 사건이었다. 본래 한국 해군은 빠듯한 예산 사정으로 인해 대잠전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했는데 이 사고 이후로 해군은 그야말로 눈을 뒤집고 대잠전에 대대적으로 투자해버렸다.

     

    먼저 포항급 초계함의 후기형 15척에 대해 최소 생존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레이더와 소나에 일부 개량이 이루어 졌다. 구체적으로는 개량소나와 TACM을 통해 북한 잠수정의 어뢰공격을 사전 탐지하고 신규 대수상레이더를 탑재하여 잠수정의 잠망경을 미리 발견할 수 있게 개선했다고 한다. 즉, 대잠 공격까지는 불가능하더라도, 최소 잠수정의 공격을 사전에 탐지해 회피할 수 있게 하여 생존성을 높인 것. 다만 잠수정 타격 수단이 없는 걸 봐서는 해군 수뇌부는 인천급이 건조되는 대로 속속 퇴역할 운명인 낡은 배에 따로 예산을 마련해 돈 쏟아부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 장기 예산책정이란 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해군의 대잠전력은 환골탈태한 수준이 되었다. 현재 인천급 호위함 batch-1 사업은 종료되어 전함이 일선에 배치되었고, 인천급 batch-2 사업인 대구급 호위함의 건조 및 배치가 진행되고 있다. 대구급의 건조 일정을 1년 앞당겨서 총 8척을 배치할 예정이며, 동시에 인천급 호위함 batch-3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대잠 전력 강화의 일환으로 신규 대잠 헬기를 도입하기 시작하였으며, 1차로 와일드캣 8대의 도입을 완료하였고, 2차로 좀 더 대형 헬기인 MH-60R 시호크 12대를 도입할 예정이다. 또한, 신규 대잠초계기인 P-8 포세이돈의 도입이 확정되어 2022년부터 배치가 시작된다. 또한 신규 구축함인 정조대왕급 구축함과 KDDX는 현 대잠전의 최신 트렌드에 뒤지지 않는 고사양의 대잠 체계가 배치되며, 기존 구축함의 대잠 소나 또한 개량중에 있다. 취약한 대잠전 성능을 보이는 포항급과 울산급도 2020년대가 도래하자 퇴역해 세계 각국으로 공여되고 있고 이제 대잠전에 취약한 한국 해군이라는 말은 옛 말이 되었다.

     

    국방부는 장성 1명을 중징계 처리하였고 9명(징계유예 1명 포함)은 경징계 처리하였다고 발표하였다. 9명의 경징계자 중 함장인 최원일 중령은 징계유예를 받았다. 이후 최종적으로 장성 1명에게 중징계가, 5명의 지휘관과 장교들에게 경징계가 확정됐다.

     

    한편 전 천안함 함장, 최원일 중령은 사건 직후 보직 해임됐고, 8개월 뒤 징계유예 처분을 받게된다. 그 이후 전방 전투부대에 배치되지 못하였으며 비(非)전투 임무만 수행했다. 그는 진급심사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신다. 2021년 중령 연령정년으로(53세) 끝내 명예 진급 뒤 대령으로 전역하게 됐다. 생존 장병들도 대부분 PTSD에 시달리고 있으며 절반은 자살 충동이 든 적이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