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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북한의 복수 “제2연평해전”

by hwani’s 2022. 12. 11.

목차

    북한의 복수 “제2연평해전”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내용
         2-1. 북한 해군의 선제 발포
         2-2. 대한민국 해군의 대응
    3. 교전 결과
         3-1. 한국 해군의 피해
         3-2. 북한 해군의 피해

    사건 개요

    2002년 6월 29일 대한민국 서해 연평도 부근 NLL 북서쪽 방향 일대에서 북한 해군 서해함대 8전대 7편대 소속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의 85mm 전차포 선제 포격 도발로 일어난 중·소규모 교전이다.

    사건 내용

    북한 해군의 선제 발포

    도합 2척의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과 등산곶(육도) 388호정이 NLL을 1.1km 침범하였고 이에 해군 고속정 4척이 교전수칙대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참수리 편대는 각 편대별로 경비정 1척씩을 맡아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는데, 이 중 684를 맡은 232편대에서는 편대장 김찬 소령이 좌승했던 기함인 358호정이 선두를 맡고 357정은 300야드(274m) 정도 뒤에서 북한 경비정 쪽으로 접근하였다. 이윽고 참수리들이 차단 기동을 실시하기 위해 684의 전진방향의 횡으로 가로지르기 시작했고, 684가 358을 지나친 순간 갑자기 속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358호정의 뒤를 따르던 357호정은 갑자기 정지한 684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히 방향을 틀었고 이로 인해 357의 좌현이 그대로 684에 노출되었다. 이때, 두 함정의 거리는 500야드(457m)로 북한 경비정의 조악한 수동 조작식 구형 육군용 대공포 및 신형 취급받던 T-34-85의 주포 ZIS-S-53 85mm 전차포로 철갑탄을 쏘더라도 초탄 명중이 가능한 거리였고 무엇보다 78식 저격보총의 사거리 내였다, 북한 경비정이 경고 사격없이 선수의 ZIS-S-53 85mm 전차포[10]를 357호정에 사격함으로써 교전이 시작되었다.

     

    북한 중형 경비 초계정에서 예고 없이 발포된 85mm포 기습 발사를 시발점으로 북한과의 교전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격대응명령을 내린 윤영하 대위은 초탄 명중 이후 4분 후인, 37mm 포탄이 함교에 명중해 아비규환이 된 찰나 저격수의 총탄에 등을 피격당해 몸을 떨다 눈을 감고 일자로 누운 채 전사하였다. 이후 이희완 부장이 의식이 없는 정장을 대신하여 지휘권을 행사하였고, 조타장 한상국 상사(당시 중사(진)) 역시 조타실 피격으로 전사, 기타 승조원들이 중상을 입었다. 또한 이어진 사격으로 인해 엔진이 정지되고 전력 공급 기기가 파괴되어 357정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엔진이 정지하여 전력이 끊긴 상황에서 부장이희완 중위가 왼쪽 다리엔 고사총 탄두 관통상, 오른쪽 다리는 37mm 2연장 고사포탄에 부상당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진두지휘를 감행하였으며 20mm 시 발칸포가 전기 계통이 나간 상황에서도 비상 전력을 가동하고 공기 유압 펌프나 스위치 등으로 어떻게든 포를 조작하여 수동으로 발사했다.

     

    전투가 시작되고 대응 사격을 한 지 12분 후, 20mm포 시 발칸 담당 병기부사관 황도현 중사(당시 하사)는 적의 집중 사격 속에서 헬멧을 쓴 두부에 37mm 포탄을 맞아 두부의 3분의 1이 포탄 탄두에 함몰되어 없어진 상태로 방아쇠를 잡고 안은 채 전사하였고, 조천형 상사(당시 하사)가 21포에서 응전하던 도중 등산곶 684호정 함교 뒷편 포좌의 ZPU-4 14.5mm 4연장 고사총과 포대 37mm 2연장 기관포 등의 집중 사격을 받던 도중 포탑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해 전신 화상을 입고 질식사한 채 방아쇠를 잡고 안고 있었다, M60 기관총을 맡고 있던 내연부사관 서후원 중사(당시 하사)도 교전 중에 684에 승조한 저격수에게 왼쪽 흉부를 관통당하고 전사한다.

     

    또한 갑판에서 소병기 사격을 담당하던 승조원들과 기관실, 통신실에 있던 승조원들 다수가 벽을 관통한 총포탄과 7호 발사관 등의 파편에 의해 부상을 입는다. 그 와중에 의무병 박동혁 수병(당시 상병)은 5군데나 총상과 파편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조원들의 구호를 위해 분투하나 서후원 중사가 684호에 승조한 함상저격수에게 왼쪽 가슴 심장 부분에 7.62mm 총탄 한 발, 오른팔에 파편을 맞고 쓰러지자 분노하여 M60 기관총을 부여잡고 난사하다 적의 집중적인 소병기 사격에 재기 불능 상태가 되고, 이를 보다 못해 극까지 참은 분노가 터져 버린 권기형 상병은 자신의 왼손이 고사총과 파편에 부서져 왼쪽 손가락을 못 쓰는 상태로 서 중사가 전사한 거치대 앞에 뛰쳐나가 서후원 하사와 박동혁 상병이 쏘던 M60 기관총을 부여잡고 오직 오른손으로만 남은 잔탄을 그대로 등산곶 684호에 전탄 발사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병기장 황창규 중사가 사격을 마치고 나온 41포에 들어가 684호에 발사하려던 것을 황창규 중사가 그러다 죽는다며 함내로 끌고 들어갔다고 한다.

    대한민국 해군의 대응

    참수리 358정은 즉시 대응 사격을 하려 했지만 북한 경비정이 357정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너무 가까운 거리라 사격 통제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나서야 북한 경비정을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 경비정은 358에서의 공격은 일체 무시하고 357정만을 집요하게 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358호정은 단 한 발도 피격되지 않고 사상자 및 함정 손상도 발생하지 않았다.

     

    후방에서 지원하기 위해 한국 해군 PCC들이 급히 북상했지만 북한이 지상 기지에서 실크웜 대함 미사일을 발사할 준비를 하는 것이 감지되었고 북한 해안의 해안포 때문에 함포 사거리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오산 공군기지에서는 F-5, F-4 편대가 출격 대기를 하고 있었다.

    교전 결과

    한국 해군의 피해

    최초 보고는 4명 전사, 19명 부상, 실종 1명, 무사고 4명이었다.

    하지만 실종된 한상국 상사가 SSU 대원들에 의해 바다 속에 가라앉은 357정의 조타실에서 발견되었고, 의무병 박동혁 수병이 후유증으로 사망하면서 6명 전사, 18명 부상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또한 참수리 357정이 대파당한것 때문에 전투 후 침수 과다로 최종 격침당했다.

     

    아군 함정들은 북측 함정이 퇴각하는 것을 레이더로 확인한 후 확전을 방지하기 위해 퇴각하였다. 하지만, 참수리 357정은 기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ZIS-S-53 85mm 전차포 5발, V-11-M 계열 2연장 37mm 함포 19발, ZPU-4 234발 도합 모두 258발과 88식 보총, 73식 대대기관총, 7호 발사관, 78식 저격보총, 31식 60mm 박격포를 포함한 각종 중화기 공격을 받고 격벽에 구멍이 뚫려 침몰하고 있었던 것.

    357, 358정의 장병들은 358정의 해수 펌프까지 동원해가면서, 승조원 중 상당수가 부상당한 상황에서조차 배수 작업을 했다. 배가 급격하게 우현으로 기울자 253 편대 소속 328정까지 가세해 357정 우현에 계류시켜 중심을 잡고, 328정이 예인을 시도해 보았으나 이미 너무 피해가 컸기에 침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6월 29일 정오, 참수리 357정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북한 해군 등산곶 684호정의 포탄 88%가 고속정 좌현에 집중됐다. 위치별로는 주갑판 상부에 122발, 주갑판 하부에 136발씩 피격됐다. 또 주갑판 하부중 선체에 치명적인 흘수선(바닷물과 선체가 접하는 부분)에 모두 42발의 피격 흔적이 있었고 특히 85㎜ 전차포에 의한 피격 5발중 2발이 흘수선 부근에 명중돼 축구공만한 구멍이 났다.

     

    이에따라 아군 20mm 벌컨포 2문 관통 및 전원케이블 손상, 레이더송신단, 통신기 전원, 좌현측 추진엔진과 발전기가 각각 피격받았다. 또 조타실 화재로 인한 천장 및 장비 손실, 통신실 화재로 통신기 열 손상, 정장실, 승조원 침실 구역(6개 격실) 화재및 내부 붕괴 등의 손실이 발생했다. 국방부 조사에서 밝혀진 것으론 지휘기능을 지닌 조타실과 함교에 59발, 기관실에 60발, 흘수선에 10발의 포탄이 명중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북한 경비정의 공격에 대응해 고속정 357호는 포대에 장전된 1천132발 중 중구경 40㎜ 보포스 기관포 6발과 20㎜ 시 벌컨 도합 674발을 발사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북한 해군의 피해

    북한 해군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은 교전 중반인 85mm 전차포로 85mm 철갑탄 초탄 발사를 한 지 720초에서 1200초가량 지난 후에 모든 포탑이 파괴되어 포격 불능 상태가 되고 다수의 포수(서주철 등은 제외)나 고사총 사수들이 사망해 7호 발사관과 88식 보총, 73식 대대기관총 등의 소병기 공격만 주고받았다. 아군 고속정의 집중 공격을 받고 조타가 불가능한 상태로 계속 빙글빙글 돌다 북측 경비정의 예인을 받고 25분 만에 퇴각하였다.

     

    지원을 한 3척의 대한민국 해군 측 고속정에서 관측한 자료에선 684의 갑판에 나와 있던 승조원 대부분이 피탄당하여 쓰러지는 광경이 관측되었다.

     

    군사정보지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인민군의 피해는 경비정 대파, 사망 13명(함장 김영식 대위 포함), 부상 25명 등 38명 사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망자의 수에 대해서는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당시 인민군 해군에 복무했던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인민군의 전사자는 3명(정장 포함)이라고 한다. 이 탈북자에 의하면 3명의 전사자는 모두 357정이 처음에 조타실에 명중시킨 한 방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 한 방에 조타실이 파괴되어 조타가 불가능해졌다는 것. 그렇지만 다른 탈북자들의 주장과는 일치하지 않는 면도 있다. 그의 주된 원인은 북한 측이 자기들이 이겼다는 식으로 주장하기 위해 피해자 규모를 줄여 발표하기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 해군 출신이라는 탈북자들이 제1연평해전 전사자에 대하여 상반된 주장을 하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측에선 적어도 1백 명 이상 북한 해군이 죽었으리라 예상했지만 10명도 안 된다는 주장에서 그쯤 된다는 주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 탓에 한국 측 조사 기록이 더 정확성을 가진다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