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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청산가리 연쇄 독살 사건 - 김선자 사건

by hwani’s 2024. 7. 9.

목차

    청산가리 연쇄 독살 사건 - 김선자 사건

    목차
    1. 사건 시작
    2. 가족들의 죽음
    3. 검거 및 판결

    사건 시작

    1986년 10월 31일, 49세의 김계환은 이웃이자 계모임 회원이었던 김선자의 제안으로 서울 신당동의 한 목욕탕에 갔습니다. 김계환이 탈의를 하던 중, 김선자가 건넨 음료를 마신 뒤 심한 경련과 호흡곤란으로 사망했습니다. 사인은 독극물 중독으로 밝혀졌으며, 김선자는 그 사이 김계환의 패물을 가로챘습니다.

    당시 유족들은 의심스러워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넘어갔습니다. 1987년 4월 4일, 김선자는 시내버스 안에서 또 다른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50세 여성 전순자가 독극물 중독으로 버스에서 쓰러져 사망했는데, 그녀 또한 김계환과 같이 김선자와 계모임을 하는 회원이었고, 김선자는 그에게 7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부검 결과 치명적인 독극물 성분이 검출되면서 김선자가 경찰의 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1988년 2월 10일, 김선자는 46세 여성 김여인에게 접근했습니다. 김여인이 김선자가 건넨 율무차를 마시자 계속 구토를 하는 등 의심스러워했고, 이에 김선자의 계획은 살인미수로 끝났고, 이후 김선자는 김여인에게 120만 원을 갚고 그녀의 안부를 챙겼다고 합니다.

    가족들의 죽음

    1988년 3월 27일, 73세의 김종춘이 친척의 환갑 잔치에 참석한 후 시외버스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법의학 지식이 부족했던 의사들은 노인성 심장마비로 판단하고, 유골 화장 처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딸 김선자가 건넨 건강음료를 마시고 사망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화장된 유골에서 독살 증거를 찾지 못했고, 살해 동기도 미미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4번째 범행이 성공했고, 같은 해 4월 29일 김선자의 동생 김문자도 버스 안에서 사망했습니다. 독극물 검사 없이 심장마비로 처리되었는데, 김선자는 동생에게 1,000만 원의 빚이 있었고, 동생 사망 후에도 동요하거나 슬퍼하는 모습 없이 동생의 집을 뒤져 금품과 귀금속을 훔쳐갔습니다.

    약 3개월 후인 1988년 8월 8일, 김선자의 시누이 손시원도 같은 방식으로 사망했습니다. 김선자는 손시원을 다방으로 유인해 준 음료를 마시게 한 뒤, 480만 원 상당의 현금과 수표를 강탈하고 현장을 빠져나갔습니다.

    검거 및 판결

    경찰은 1차 사건부터 김선자를 의심했지만, 물증이 없어 참고인 조사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돌연사와 독살 사건이 발생했고, 사망한 사람들이 모두 김선자의 주변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경찰은 1988년 9월 2일 김선자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하고 검거했습니다.

    검거된 김선자는 "증거를 대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소리치며 발악했습니다. 이에 검찰과 경찰은 신당동 목욕탕 희생자 등 이미 묻혔던 시신 4구에 대해 부검을 결정했습니다. 비록 장례가 끝난 시신을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다시 부검했지만, 이러한 조치는 당시의 국민정서상 부관참시와 비슷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습니다.

    다행히도 부검 결과 4구의 시신 중 3구에서 청산염 성분이 검출되었습니다. 이후 경찰은 영장을 받아 김선자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그곳에서 다이아몬드 반지, 수표, 통장 등 가족과 친구들을 살해한 후 훔쳐낸 물건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증거는 화장실 화변기 뒤에 숨겨진 청산염 덩어리였습니다.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김선자는 정식으로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재판에서도 그녀는 범행을 끝까지 부인했지만, 치명적인 물증인 청산가리가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하여 1심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이에 김선자는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지만, 2심과 3심에서도 사형 판결은 유지되었습니다.

    결국 김선자는 사형이 확정되어 서울구치소와 대전교도소를 거쳐 1997년 12월 30일, 다른 장기 미집행 사형수들과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이는 사실상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이 되었습니다.

    감옥에서도 김선자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워낙 확실한 증거가 있어 재조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범행은 아버지와 여동생을 포함한 친척 5명을 살해한 중범죄로, 당시 여론의 공분을 샀습니다.

    처형 직전 김선자는 태도를 바꾸어 자신의 사치욕을 인정하며, 가난하게 태어난 것이 죄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고, 죽는 순간까지 남탓과 자기변명을 토로했다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