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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경남 의령군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대량 살인 사건

by hwani’s 2024. 6. 19.

경남 의령군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대량 살인 사건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발단
3. 사건 전개
4. 희생자

사건 개요

1982년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대한민국 경찰의 심각한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당시 정신적 문제가 있던 우범곤 순경이 경찰로 채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근무 중 술에 취해 있었고, 무기고 열쇠마저 잃어버리는 등 관리가 허술했습니다.

사건 당시 경찰들은 온천에서 접대를 받고 있었고, 국민들이 총에 맞아 죽거나 중상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도 현장에서 멀리 도망가 숨어 있었습니다. 경찰의 근무 태만과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사망자 수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대한민국 경찰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자 수조차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고 백서 한 권도 발간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대응 실패와 사후 관리 부실로 인해 이 사건은 오랫동안 국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사건 발단

1981년 12월 30일 오후 5시 궁류지서로 전근 온 뒤 이듬해 2월 8일에 하숙을 하던 우범곤은 이웃집에 살던 전(田)양과 사귀게 되었고 3월 9일에 전양의 집에서 동거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전양의 가족들은 동거 전부터 두 사람의 교제를 극력 반대하였는데, 이유는 바로 우범곤의 술버릇이었습니다. 술만 마셨다 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는 등 심하게 행패를 부려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으니, 가족들이 반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범곤이 궁류지서로 전근 온 것 또한 형식상 전근이자 사고를 쳐서 좌천당한 것에 가깝습니다. 원래 101경비단 소속으로 청와대 경호로 근무했다가 거친 성격으로 인해 근무 부적격자 판정을 받아 청와대 경호에서 제외, 전출 처리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반대를 무릅쓰고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였습니다. 동거에 들어가기 전에 전양의 부모는 결혼한 뒤 함께 살라며 만류하였지만, 우범곤이 결혼 비용이 없다며 가을로 식을 미루기로 하고 당장 혼인신고부터 하겠다고 고집하였습니다. 가뜩이나 집안이 가난해 늘 열등감에 젖어 있던 우범곤은 식도 올리기 전에 여자 집에 얹혀살게 되면서 자신의 무능함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건 전개

1982년 4월 26일, 우범곤은 저녁 근무를 위해 12시경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동거녀가 그의 몸에 붙어있던 파리를 잡기 위해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쳤고, 이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화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우범곤은 16시경 지서로 갔고, 19시 반경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만취 상태에서 동거녀를 주먹으로 폭행하여 코피가 나게 했고, 동거녀의 친척 언니가 말리려 들자 그녀의 뺨까지 때리며 난폭하게 행동했습니다. 소리를 듣고 몰려든 동네 사람들이 동거녀를 두둔하자, 우범곤은 다시 집을 나섰습니다.

지서로 향하던 중 우범곤은 지서에 배속된 육군 방위병들과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때 동거녀의 남동생이 와서 경찰이냐고 소리치자, 우범곤은 폭발하여 카빈총을 장전했고 방위병들을 총으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는 예비군 무기고에서 M2 카빈 2자루, 실탄 144발, 수류탄 7개를 탈취했습니다. 이후 우범곤의 범행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자 시간 범행내용
4월 26일 21:40 - 지서를 나와 대구에서 표구사를 하는 26세 남자에게 발포<br>- 궁류면 토곡리 재래시장으로 달려가 조준 사격, 장을 보러 온 마을 주민 3명 살해
  21:45 - 궁류우체국으로 가서 여성 교환원 2명과 숙직 중이던 집배원 1명 살해<br>- 전은숙 씨가 숨기 직전 이장 집의 행정전화와 의령우체국 간 코드를 연결해 주민이 신고(22시 34분) 가능
  22:00 - 압곡리 매실부락으로 가서 10여 분간 총기 난사, 주민 4명과 인근 마을 2명 살해
  22:10 - 운계리 시장으로 달려가 주민 7명 살해, 수류탄 투척
  22:50 - 평촌리 상갓집에 난입, 상주 일가족 등 12명 살해<br>- 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 난사, 23명 추가 살해
4월 27일 05:35 - 평촌리 마을에 나타나 알고 지내던 주민 일가족 5명 폭사

 

우범곤의 범행 중 가장 악질적인 부분은 어린이와 갓난아기까지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민가에 침입하여 아이들을 사살하였고, 평촌리 상갓집에서 20여 명을 살해한 뒤 현장을 떠나려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되돌아가 그 아기마저 사살하는 잔혹한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또한 우범곤이 총기를 난사하며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한 택시 기사가 위험을 알리며 집집마다 경고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불을 끈 집들은 화를 면할 수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 택시 기사는 결국 우범곤에 의해 살해되었고 불을 끄지 못한 집들도 참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범행 당시 우범곤이 사용한 실탄은 총 135발이었으며, 자살 후 경찰이 회수한 남은 실탄은 9발이었습니다.

희생자

이 사건으로 인해 무려 62명의 주민들이 사망했고 3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 중 6명의 희생자는 총상이 악화되어 병원에서 치료받다 사망하였습니다.

우범곤은 의령군 일대의 네 개 마을을 거의 모두 휩쓸며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이는 시골 사회의 규모를 감안할 때 매우 심대한 피해였습니다. 조상 대대로 한 곳에 모여 살던 산골 마을의 특성상, 일가족 전체가 몰살되거나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안타깝게도 20세 이하의 어린 희생자가 16명이나 되었으며, 그 중 10세 이하의 어린이와 갓 태어난 1개월 된 아기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체국 숙직 중 참변을 당한 집배원의 경우, 그의 부인마저 집에서 살해되어 세 남매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또한 첫 번째 희생자인 청년과 우체국 교환원의 경우 미혼으로 사망하여 유족들이 영혼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의령 지방에서는 아직도 4월 26~27일 즈음 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많다고 합니다. 또한 한 네티즌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 당시 가족을 모두 잃은 마을 주민이 술을 마시면 경찰서를 찾아와 한풀이를 하곤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