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공상허언증 홍순영 6세 소녀 곽재은양 유괴 살인 사건
목차
1. 사건 내용
2. 범인 검거
3. 범행 동기
4. 판결
사건 내용
1990년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 살던 6세 소녀 곽재은 양은 아파트 단지 내의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등하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범인 홍순영은 범행 당일 유치원 주변을 배회하다가 우산꽂이에 있던 곽 양의 이름을 보고 그녀를 범행 대상으로 선택했습니다. 홍순영은 허위 전화로 곽 양을 유치원에서 하교시켰고, 담임 선생님은 그녀가 아이의 이름과 반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인 것으로 판단하여 별다른 의심 없이 아이를 보냈습니다.
정오가 되어도 곽재은 양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엄마는 유치원에 갔지만 교사는 아이를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계속 수소문한 끝에 오후 5시에 경찰에 유괴 신고를 했습니다.
6월 26일 오후 5시, 젊은 여성이 곽 양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재은이를 데리고 있으니 신고하지 말고 5,000만 원을 가져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강동경찰서는 추적 끝에 해당 전화가 공중전화에서 발신된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 후 10분 뒤, 범인 홍순영이 다시 전화를 걸어 계좌번호와 가짜 이름으로 만든 예금주 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당시는 금융실명제 시행 전이어서 가명으로도 계좌 개설이 가능했습니다.
곽 양의 어머니는 6월 27일 오전에 500만 원, 다음 날 오전에 2,500만 원을 범인이 알려준 조흥은행 계좌에 송금했습니다. 경찰은 범인 검거를 위해 조흥은행 본점과 서울시내 모든 지점, 전산실에 형사들을 배치했습니다.
이틀 후인 6월 29일 오후, 범인이 30만 원을 인출한 기록이 포착되었는데, 놀랍게도 조흥은행이 아닌 (구)국민은행 본점의 ATM에서였습니다. 이에 경찰은 비상 경계령을 내렸고, 약 2시간 후 홍순영이 명동 롯데백화점 내부의 조흥은행 출장소 ATM에서 10분간 260만 원을 인출했습니다.
범인 검거
주변 지점에 배치된 형사들이 신속하게 명동 롯데백화점 내 조흥은행 ATM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막 돌아나오던 키가 매우 작은 젊은 여성을 주목했습니다. 경찰은 그녀가 범인임을 직감하고 추적에 나섰고, 마침내 을지로입구역 계단에서 체포에 성공했습니다. 체포된 범인은 23세의 홍순영이었습니다.
사진을 통해 홍순영의 체격이 매우 왜소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옆에서 그녀를 붙잡고 있는 두 여성 형사들의 체격이 홍순영에 비해 훨씬 건장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홍순영은 "공범이 있다"며 거짓 진술을 하며, 자신의 남자친구를 공범으로 지목했습니다. 경찰은 이에 낚여 홍순영을 공범이 기다리고 있다는 서울역까지 데려가 공범을 유인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홍순영은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투신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다행히 기관사의 급정거로 인해 경상만을 입었습니다.
끝내 재은이의 행방을 밝히지 않던 홍순영은 결국 "숙명여자대학교 한 건물의 물탱크 뒤에 재은이의 시신을 은닉했다"고 자백했습니다.
범행 동기
그녀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강한 허영심과 윤리의식이 부족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학 입시에서 번번이 불합격하자, 부모님의 기대와 자신의 자존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짜 숙명여대생 행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학생증을 위조하여 4년 동안 태연히 도강하며 모든 수업을 들었고, 정치외교학 전공 서적을 구입하여 전공 학생 행세를 했습니다. 숙명여대 MT 및 졸업식 등 각종 대학 행사에도 참석하며 주변을 철저히 속여왔습니다. 당시 학사 행정이 전산화되지 않아 이러한 가짜 학생 행세가 가능했고, 홍순영 외에도 다른 유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가짜로 졸업한 후에는 KBS 기자로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이는 전형적인 공상허언증의 사례였습니다. 초반에는 숙명여대생이 범인이라는 오보가 나왔지만, 경찰 조사 결과 그녀의 이름이 졸업생 명단에 없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홍순영은 처음에는 숙명여대에 정식으로 입학하려 했지만, 학교 생활과 자신의 정체가 들킬까 봐 걱정되어 온 힘을 거짓말에 쏟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대학 졸업장만 있어도 취업이 비교적 수월했기 때문에, 그녀의 거짓말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서 홍순영이 진짜 숙대생인지 의심하는 시선이 강해졌고, 가짜 숙대생이라는 소문이 점점 퍼져나갔습니다. 심지어 혼담이 오가던 남자친구에게까지 그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거짓된 삶을 살아온 홍순영은 극단적으로 병들어 갔습니다. 가짜 학생 시절에는 돈을 펑펑 쓰고 다녔지만, 취직 후에는 더 이상 돈을 받을 수 없었고, 오히려 가족에게 한턱을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홍순영은 남자친구와의 결혼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자, 홍순영은 범죄를 선택하게 됩니다. 당시 유괴 범죄가 흔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홍순영은 허위 전화로 곽 양을 유치원에서 유인해 교살하고 시신을 숨긴 뒤, 협박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순영은 남자친구에게 집착했지만, 결국 공범이라며 그의 이름을 내세워 그를 곤욕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홍순영의 파렴치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판결
당시 유괴살인 사건들은 매우 충격적이고 비극적이었습니다. 특히 1987년 12월에 발생한 원혜준 유괴 살인 사건과 1990년 10월 부산 새마을금고 권총 강도 살인 사건은 그 동기와 과정이 매우 잔혹했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연쇄살인, 대량살인 등과 더불어 경찰관이나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경우 무조건 사형이 원칙이었습니다.
홍순영 사건의 경우, 1990년 5월 국민학교 1학년 학생을 납치하여 5시간 동안 자신의 집에 감금했다가 풀어주었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또한 스스로 사형을 원한다고 밝혔기 때문에, 사건 발생 후 반년 만인 1990년 12월 21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항소 끝에 1991년 9월 13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991년 12월 18일, 다른 8명의 사형수와 함께 집행되었습니다. 홍순영은 처형 당시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고 합니다. 구치소에 온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갑자기 처형되어 전혀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유언도 거부했고, 겨우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빕니다. 부모님께 너무 큰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말만 남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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