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광주 조선대 교지편집위원장 이철규 의문사 사건
목차
1. 사건개요
2. 사건내용
사건개요
1989년 5월 10일에 광주 직할시 북구 청풍동 제 4수원지 상류에서 조선대학교 교지 편집위원장인 이철규가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철규는 당시 25세이며, 전자공학과 4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사건내용
1989년 5월 10일에 광주 직할시 북구 청풍동 제 4수원지 상류에서 조선대학교 교지 편집위원장인 이철규(이哲揆)의 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이철규는 1985년 11월 반외세독재투쟁위원회 활동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1987년 7월 가석방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조선대학교 재단을 몰아내는 데 앞장선 인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철규는 1989년 5월 3일 밤 10시쯤 택시를 타고 무등산장 쪽으로 가던 중 경찰에게 심문을 받았으며, 일주일 후에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철규는 교지인 민주조선에 <미제 침략사 100년사>를 게재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었고, 그의 죽음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검문 도중 이철규가 도망가는 바람에 그를 놓쳤다고 발표했으며, 이철규의 사체는 발견 당시 얼굴이 상해 있어 식별하기 어려웠습니다. 부검 결과 익사로 판단되었으며, 이에 대한 의문과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실족 후 익사로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이 사건은 의문사로 간주되며, 유족들과 학생들은 계속해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조사 결과에 대한 비난이 있었으며, 이 사건은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사건이후
2004년 5월 21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에 국가안전기획부의 개입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당시 학원 민주화 운동으로 취임한 이돈명 총장과 진보적인 교수들을 몰아내고 광주지역 학원 민주화 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공작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철규가 작성한 문서의 내용이 용공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수사과로 넘겨졌다는 진술과 광주지역 안기부 요원으로부터의 진술도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의문사위는 수사를 형식상 검찰이 진행한 것처럼 꾸몄으나 사실은 공안합수부라는 위법한 기관을 통해 수사가 이루어졌음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은 자료가 없다며 협조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장준하의 의문사 사건에서도 발생했으며, 그 이후에는 추가 자료가 발견되고 청와대에 일일동향보고 관련 문건이 있다는 진술이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의문사위는 국가정보원에게서 자료가 없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법의학적 감정을 맡은 일본 법의학자 카미야마 자타로 교수의 감정 결과에 따르면 이철규의 손목 부위에 압박이나 찰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으며, 우측 종아리와 옆구리에는 요철 모양의 흉터와 광범위한 근육출혈이 있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누워 있는 이철규의 몸을 누군가 바닥에 요철이 있는 구두를 신고 압박한 것으로 보이며, 직접적인 사인은 익사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외부의 힘(구타 등)에 의해 큰 상처를 입은 뒤에 물에 던져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카미야마 교수의 감정 결과는 사건 당시의 부검 소견이나 교수들의 의학적 의견과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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