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대한민국 최악의 화재 사건 -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
목차
1. 사건 개요
2. 대연각 호텔
3. 사건 경위
4. 화재 진압
사건 개요
1971년 12월 25일에 발생한 대연각 호텔 화재는 대한민국 최악의 화재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세계에서도 최대의 화재 사고 중 하나로, 총 사망자 166명(추락사 38명), 부상자 68명, 실종자 25명을 낸 참사였습니다. 이날은 성탄절이어서 호텔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에는 주한 대만 대사관의 위셴룽(余先榮) 공사 등 귀빈들도 휘말렸습니다. 공사는 11층에 묵고 있었으며, 10시간에 걸쳐 구조되었지만 화재로 인해 호흡기에 중화상을 입어 1972년 1월 4일에 사망하였습니다. 또한 주한튀르키예대사관의 무관 파질 유즈바시오글루 대령도 화재로 사망하였습니다.
이러한 참사는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의 화재 예방과 대비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연각 호텔
1967년 10월 8일에 착공하여 1969년 4월 30일에 완공된 대연각 호텔은 총 연면적이 19,304m²이며, 지상은 21층, 지하는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호텔은 222개의 객실과 8대의 엘리베이터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1층은 로비, 2층은 그릴및 커피숍, 3층은 연회장, 4층은 기계실로 사용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ㄱ자 모양으로 나뉜 건물 중 동측 5~20층은 객실로 사용되었고, 21층은 라운지로 활용되었으며, 서쪽 부분은 30여 개의 회사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개장 초기에는 대한민국에 마천루가 없었기 때문에 대연각의 높이에 대한 충격을 받거나, 제대로된 호텔이 생겼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또한, 여러 국가적인 행사에서 연회장이나 회의장으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민간에서는 결혼식장으로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21층에 위치한 나이트클럽은 상당히 비위생적이었고, 여러 차례 식품위생법을 위반하여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던 사실이 있습니다.
사건 경위
오전 9시 50분경 1층 커피 숍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원인은 프로판 가스 폭발이었습니다. 카운터에는 프로판 가스 화덕이 있었는데 사고 당일에 예비용으로 20kg 짜리 프로판 가스통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이 예비 용기의 가스를 잘못 방출시킨 것이나 가스가 샌 상태에서 화덕으로부터 그 가스에 불이 옮겨 붙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불길은 시작되자마자 계단을 막아 버려서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오질 못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말할 것도 없이 한 시간 반만에 21층 건물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불이 이렇게 빨리 번진 이유는 하나인데 빌딩의 내장재가 온통 가연성 물질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벽을 한지로 발랐고 인테리어는 목재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객실 문도 목재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옥외 비상구는 커녕 안전 대책은 전무해 많은 사망자를 냈습니다. 사실상 안전을 무시한 압축 성장이 부른 참사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호텔 주변에는 5층 내외의 낮은 건물이 바짝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낮은 층에 있던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옆 건물 옥상으로 뛰어내리거나 커튼, 침대 시트 같은 걸 뜯어서 줄을 만들어 타고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대연각 호텔이 당시 한국에서 드문 고층 건물이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21층이면 2010년대의 평범한 아파트(평균 15층)보다도 더 높았습니다. 21세기 대도시의 일반적인 빌딩도 아파트가 아니라면 10층 이상을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마천루인 것입니다.
탈출하지 못하는 고층 사람들은 창가에서 구조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생존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았던 화재 사고였지만 그 와중에 생존자들도 꽤 있었습니다. 당시 호텔 안에 약 300여 명이 있었는데 이들 중 110여명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7층에 있던 한 종업원은 복도에서 연기 냄새를 맡고 객실의 사람들을 전부 깨운 다음 옆 건물 옥상으로 피신시켜 손님과 종업원 50명을 모두 무사히 탈출시키는 영웅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8층에서 침대 시트를 뒤집어쓰고 뛰어내려 다행히 살아난 여성도 있었습니다.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 중에는 건물 밖으로 무작정 뛰어내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재로 인해 사람들이 고립된 위치는 최하층 6층부터였습니다. 따라서 맨몸으로 뛰어내려 살아남을 수 있는 높이는 아니었기에 건물 주변에는 추락사한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침대 매트리스를 안고 뛰어내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들 중에서 생존자가 있기는 했지만 사망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대피가 어려웠던 이유는 빌딩 내부의 계단이 방화문이 없는 개방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계단은 비상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이 번지는 통로로 작용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역시 불이 나자 그대로 멈춰버렸습니다. 비상계단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스프링클러 같은 소화장비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대피가 어려웠던 이유는 대연각 빌딩이 불이 난 호텔과 옆쪽에 오피스 빌딩과 붙어 있는 구조였는데, 이쪽으로 통하는 비상구가 대부분 잠겨 있었습니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도 잠겨 있었고, 실제 진화 후에 20여 구의 시체가 이 옥상 출입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대피할 통로가 모두 막혀 버린 상황이었습니다.
화재 진압
대연각 호텔 화재 당시, 가까운 소방서와의 거리가 700m로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초기 소방대의 출동이 신속했습니다. 화재 진압에는 소방관 528명, 의용소방대원 113명, 경찰 750명, 구청 직원 400명, 군인 115명, 의료반원 30명 등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고, 주한미군의 소방대까지 동원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에는 고가 사다리 차량이 몇 대 없었기 때문에, 최대 7층까지 밖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8층 이상에 갇힌 사람들은 구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황학정의 궁사들을 불러 화살에 로프를 묶어 쏘는 시도도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화재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진압되기까지 7시간이 걸렸으며, 7층 이상에는 여전히 열기가 남아있어 접근이 불가능했습니다. 시신 수습 및 발굴에는 18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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