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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축구 스토리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위트레흐트의 백조 ‘ 마르코 판바스턴’

by hwani’s 2021. 1. 31.

목차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위트레흐트의 백조 ‘ 마르코 판바스턴’

    목차
    1. 선수소개
    2. 경기스타일
    3. 클럽경력

    선수소개

    - 마르코 판바스턴 (Marco van Basten)

    - 생년월일 : 1964년 10월 31일, 키 : 188cm, 체중 : 93kg

    - 마르코 판바스턴은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출신 축구 행정가.

    - 현역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맡았고, 2016년부터 FIFA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음.

    - 비교적 짧은 활동기간에도 불구 발롱도르를 3번 수상한 전설적인 선수,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 루드 굴리트,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더불어 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 초반 네덜란드와 AC 밀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

    - 티에리 앙리, 안드리 셰브첸코, 필리포 인자기, 뤼트 판니스텔로이, 디디에 드록바 등 1970년대생 스트라이커들의 한결같은 우상은 바로 판바스턴.

    - 별명은 Il cigno di Utrecht(위트레흐트의 백조).

    경기스타일

    - 판바스턴은 볼을 컨트롤하는데 있어서 특출난 강점을 보였고, 이상하게 튕기는 공, 바운드 되는 공, 하늘에서 날아드는 공, 괴이한 스핀이 걸린 공을 시저스킥, 오버헤드킥, 슬라이딩 슛팅 등의 발리슛으로 잡아내는 기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

    - 판바스턴은 매우 우아한 공격수로 회자되곤 하는데, 그의 킥이나 트래핑이 몹시 빠르고 간결했기 때문.

    - 킥 능력이 뛰어났던 만큼 공이 어려워 보이는 위치에 오더라도 시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짐. 남이 보기에는 아주 어려운 각도라도 슛하거나, 아니면 약간이라도 각도를 살려낸 후 재빠르게 슛으로 연결. 이러한 능력 덕분에 슛이 예측되지 않는 각도에서 심지어 수비수도 붙어 있는데 엄청 빠른 타이밍에 시도한 슛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음.

    - 판바스턴은 킥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헤딩도 슈팅과 연계 둘 다 훌륭했으니 무리하게 돌파하기보단 크로스를 기다리는 것이 효과적. 이러한 전형적인 타겟 스트라이커는 공이 공급되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를 만큼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약점이 있으나, 그가 몸담았던 팀들 중 판바스턴에게 공을 공급해 주지 못할 만한 팀은 없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음.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라는 별명이 붙는게 이상하지 않은 것.

    - 판바스턴은 호나우두와 같이 강력한 돌파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공중전과 연계가 가능한 데다 킥력 및 슛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범위가 정말로 탁월. 요즘 선수로 따지면 카림 벤제마에게 프리킥을 장착시킨 후 거의 모든 능력치를 대폭 상향 조정한 것.

    - 그의 플레이는 그야말로 명료한 스트라이커의 교본과도 같은 것이어서 많은 꿈나무들을 매료시켰고 그들을 세계적인의 플레이어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됨. 그 이후 세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라 할 수 있는 앙리와 셰브첸코는 판바스턴이 자신들의 우상이었음을 공공연히 밝힘.

    - 그는 너무 긴 시간 동안 부상과 싸워야만 했는데, 22살 때인 1986년에 당한 발목 부상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고, 장기 부상을 너무 많이 당함. 선수 생명이 끝난 92-93 시즌 그의 나이는 겨우 29살. 이 시기 그는 과감히, 당시로서는 최첨단 수술로 거의 전례가 없던 연골 이식 수술을 받는 결단을 내리지만, 수술은 대실패로 끝났고 그는 커리어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음. 축구 선수로서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할 나이이고 실제로도 기량 또한 원숙해져서 마지막 시즌에는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괴물처럼 골을 집어넣었기에 현재의 의학 기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음.

    클럽경력

    AFC 아약스

    - 축구선수 아버지와 체조선수 어머니를 둔 운동 선수 집안에서 태어나며, 어린 시절부터 그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아 여섯 살 때부터 위트레흐트 유소년 팀에서 뛰게 됨.

    - 그의 재능은 특출난 것으로, 15세 때 명문 아약스로 팀을 옮기게 되고, 16세인 1982년 시즌 토탈 사커의 아이콘 요한 크루이프와 교체되며 데뷔, 골을 넣으며 커리어를 시작. 시대와 시대, 토탈과 압박이 교차하는 순간.

    -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당시 유럽무대에서 다크호스 역할쯤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아약스에서 16세의 나이로 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음.

    - 그 시즌 그는 컵 경기 포함 25경기에 13골 기록, 전설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하늘이 내려준 재능도 엄청나게 빛을 발하기 시작.

    - 아약스에서 뛴 6시즌 동안 133경기 128득점을 기록하며 4시즌 연속 득점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85-86 시즌에는 유럽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에게 주는 유러피언 골든부트를 수상.

    - 판바스턴은 컵 위너스 컵에서 아약스를 우승시키며 22살의 나이에 네덜란드 에레디비시를 평정하고 거액의 이적료와 함께 AC 밀란으로 이적.

    AC 밀란

    - 당시 밀란은 유명한 밀란 제너레이션으로 전 세계 축구사를 통틀어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꼽힐때. 특히 이 시기의 밀란은 토탈 풋볼을 한층 발전시킨 압박 축구를 창시하며 전술적 혁신으로도 명성을 높였을 시기.

    - 판바스턴이 데뷔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는데, 데뷔 시즌부터 문제는 있었는데, 첫 경기는 페널티 킥 골로 장식하며 데뷔를 하지만 잠깐 무실점 경기가 이어지다 왼발목 부상으로 데뷔 시즌을 거의 소득 없이 보냄.

    - 다음 시즌부터는 득점포를 퍼부으며 은퇴하기 전까지 147경기 90득점을 기록, 2번의 득점왕을 차지. 무릎 부상에 시달린 기간이 길고 심장마저 말썽을 부려 슬럼프에 빠진 기간이 있었음에도 실제 경기 시간으론 90분당 한 골 이상을 퍼부어대는 미친 득점력을 보여줌.

    - 명성을 고려했을 때 세리에 A에서의 그의 활약은 좀 아쉬운 감이 있는데, 공격수로서의 역할은 완수했지만, 명성에 비해 기여한 바가 미묘하기 때문.

    - 우승한 시즌은 첫 시즌과 31경기 25골로 득점왕에 오른 1991-92 시즌, 사살상 커리어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2-93 시즌이었는데, 6시즌 동안 3회 우승이라면 충분히 훌륭한 기록이나 당시 축구계에 압박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며 클럽 대항전을 독식하던 밀란 제너레이션의 에이스로써는 조금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

    - 특히 첫 시즌과 마지막 시즌은 부상으로 신음하며 결장이 잦았기에 우승에 있어 공은 있으나 주축이라 할 수는 없기 때문.

    - 그래도 한 가지 감안해야 될 점은 이 시기 세리에 A는 세계 최고의 리그이면서 결코 한 팀이 독주를 하는 법이 없었고, 동시대 밀란의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산이 있었다는 것.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UC 삼프도리아 등도 강했으나 역시 가장 컸던 장벽은 마라도나의 SSC 나폴리.

    - 허나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등 공신이었는데, 사실상의 데뷔 시즌인 88-89 시즌 네덜란드의 UEFA 유로 1988 우승을 이끌고 돌아온 판바스턴은 1경기를 제외한 밀란의 전경기를 풀타임 출장, 유러피언컵에선 10골을 때려박았으니 우승을 진두지휘한 것이나 다름없었음. 특히 이 시즌 그가 기록한 33골 중에 12골이 결승골이나 만회골. - 이 활약에 힘입어 판바스턴은 1988년 발롱도르를 수상.

    - 1989-90 시즌의 판바스턴은 지난해의 혹사 탓에 부상을 입으며 고생하나 그럼에도 리그에서는 득점왕을 차지하는 활약을 보였고 밀란의 유러피언컵 2연패에 기여.

    - 12번의 결승골 혹은 만회골을 기록하는 영양 만점 활약으로 발롱도르 2연패를 달성.

    - 1991-92 시즌 원기왕성한 판바스턴은 리그에서는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우승을 이끌었으며 17번의 결승골과 만회골을 기록하며 통산 3번째 발롱도르를 수상. 당시로써는 요한 크루이프, 미셸 플라티니와 함께 최다 수상 기록.

    - 마지막이었던 1992-93 시즌은 부상으로 신음했으나 실력과 활약은 더욱 원숙해진 시즌. 판바스턴은 오른쪽 발목이 완치되지 않았음에도 무리한 출장을 감행하나 밀란은 또다시 마르세유에게 가로막혀 준우승.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부상이 재발한 판바스턴은 선수생명 연장을 위해 당시로서는 생소샜던 연골 이식 수술까지 받게 되는데 불행히도 수술결과는 좋지 못했고 결국 그의 커리어는 완전히 끝나게 됨.

    - 결국 1995년 재활을 포기한 판바스턴은 불과 31살의 이른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언. .

    - 선수 시절 기록은 클럽 통산 373경기 277득점, 리그 280경기 218득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