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2002 월드컵 4강 주역 정확한 크로스의 달인 '설기현'
목차
1. 선수소개
2. 경기스타일
3. 클럽경력
선수소개
- 설기현
- 생년월일 : 1979년 1월 8일, 키 : 187cm
-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 2020년부터 경남 FC 감독을 맡고 있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의 주역.
경기스타일
- 빠른 스피드, 유럽 선수들과 대등한 몸싸움이 가능한 체격, 정교한 크로스 3박자를 갖춘 양발잡이 측면 공격수로 한국 축구에서 상당히 드문 스타일의 선수.
- 히딩크는 유럽 선수들과 몸 싸움이 가능한 설기현을 월드컵 무대에서 주전으로 기용하고 이천수와 차두리, 최태욱은 상황에 맞춰 백업으로 활용.
- 설기현 이후 대표팀에선 이 3박자를 갖춘 측면 공격수가 완전히 사라졌고, 특히 크로스는 제대로 올리는 선수가 아예 없음.
- 히딩크는 설기현을 두고 "한국에서 유일하게 외국 선수들과의 몸싸움을 이겨내고 크로스를 올려줄 수 있는 선수"로 평했음.
- 크로스를 평하자면 고정운 이후 대표팀에서 가장 정확한 크로스를 올리는 선수. 정확도는 물론이려니와 속도가 빨랐고, 각도 예리. 양발 잡이라 좌우도 가리지 않았으며, 정지상태에서 올리는 크로스 뿐 아니라 러닝 크로스도 한국에선 독보적. 2006년 월드컵 프랑스전에서 박지성의 동점골 과정에서 올린 런닝 크로스가 좋은 예.
- 피지컬도 한국 기준으론 스피드, 경합능력 모두 최상급이었고 187의 장신이라 공중볼도 상당히 좋음. 이 피지컬을 바탕으로 약팀들 상대할 때는 최전방 스트라이커로도 뜀.
- 단점은 둔탁한 볼터치와 떨어지는 축구지능. 그가 대표팀 생활 내내 지적받은 골 결정력 부족이나 패스 정확도 부족은 둔탁한 볼터치에 기인. 건장한 신체를 바탕으로 한 슈팅파워는 좋았으나 볼을 부드럽게 다루는 능력이 부족하니 공이 뜨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감. 또 박지성만큼의 축구지능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공간 창출력이 부족해 다른 공격수들과의 연계 플레이가 약함.
- K리그에서의 행적이 좋지 않다보니 자주 비하당하지만 상당히 훌륭한 실력과 업적을 남긴 선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저평가를 하게 되는 원인, 가장 큰 단점이 뭐냐면 이 선수가 심각한 외골수라는 것.
- 포지션 고집도 심한데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주전 보장에 집착,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실력에 비해 너무 낮은 수준의 팀만 고집한 것도 문제. 대표적으로 2002-03 시즌 설기현은 안더레흐트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었는데, 월드컵에서의 활약에 유럽 무대에서의 활약까지 덧붙여 발롱도르 50인 후보까지 올랐을 정도. 이 시기 토트넘, 첼시 등 EPL과 라리가의 상위권팀에서 영입을 희망했을 정도 였음에도 이적하지 않았으며, 04-05 시즌 당시 벨기에를 떠날때도 에버튼이나 웨스트햄에서 관심을 보였다. 그럼에도 설기현이 선택한 팀은 엉뚱하게도 그 해 챔피언쉽으로 강등된 울버햄튼. 풀럼을 떠날 때도 분데스리가의 여러 팀에서도 관심을 보였지만 설기현이 선택한 곳은 황당하게도 중동의 팀인 알 힐랄.
- 물론 어떤 팀을 선택할지는 선수의 자유이고 주전으로 나오지도 못 할 높은 레벨의 팀을 고집하는 것도 안 좋지만, 설기현은 너무 본인의 레벨에 맞지 않는 팀을 골랐고, 이런 선택들로 본인의 전성기와 기회들을 약팀에서 날려버린 것은 아쉬운 점.
- 이적한 팀들의 수준이 낮았기에 쉽게 주전이 가능했지만, 전성기에 한 단계 높은 도전을 하지 않은 점이 아쉬움.
클럽 경력
로얄 앤트워프
- 주필러 리그에서 2000~01 첫 시즌 27경기동안 11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했고 이는 차범근에 이어 역대 2번째 유럽 리거 시즌 10골 기록.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다음 시즌은 같은 리그 우승후보인 RSC 안데를레흐트로 이적.
RSC 안데를레흐트
- 안데를레흐트에서 벨기에 리그 우승을 이뤘고 슈퍼컵 대회에서는 해트트릭을 하며 4:1 대승을 이끌어 우승.
- 2002년 안데를레흐트 소속으로 발롱도르 후보에 뽑히기도 하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음.
- 2002~03 시즌에는 시즌 43경기 13골을 기록, 2003-2004 시즌에는 UCL에 진출하여 본선이 아닌 예선이기는 해도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한 한국인이 되었고 마찬가지로 예선 라운드이기는 하지만 한국인 첫 UEFA 챔피언스 리그 골도 기록. 당연히 국내에서의 위상도 어마어마해서 국대 에이스급으로 부상.
- 처음부터 빅리그 빅클럽을 노리기보다 중급리그 중소팀에서 '유럽에 적응'하고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간 성공사례로 꼽히며 이동국과의 비교가 극에 달하던 시절. 주필러 리그에서 4시즌 동안 32골을 기록.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 잉글랜드 챔피언쉽의 울버햄튼으로 이적. 이 시기에 사실 EPL에서도 제의가 왔었는데 본인은 경기를 뛰는걸 중요하다 여겼는지 울버햄튼을 선택. 이때 글렌 호들 감독의 전술에 따라 최전방 공격수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를 넘나들며 팀의 주전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고, 2004-05 시즌 챔피언십과 각종 컵대회를 합쳐 총 40경기 6골을 기록.
- 2005-06 시즌에 FA컵에서 아스날을 만났는데 티에리 앙리가 설기현과 경기 중 몸을 충돌할 뻔한 뒤 양팔을 닭날개처럼 퍼덕이는 몸짓을 해서 국내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음. 겁쟁이라는 뜻 외에 동양인을 비하하는 뜻이라고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으나 일반적으로 동양인 비하 제스처로 쓰이는 것은 아니라서 가라앉음.
- 2006년 1월 30일 박지성이 속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A컵에서 대결.
- 2005-06 시즌 통산 설기현은 챔피언십과 각종 컵대회를 합쳐 36경기 4골로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 시즌 종료 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한 챔피언쉽 우승팀인 레딩 FC로 이적. 당시 레딩은 구단 최고 이적료를 지불.
레딩 FC
- 이적 초기 EPL 선수랭킹 11위에 오르는 등 EPL에서 상위급의 선수로서 활약, 레딩에서도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는 등 팀의 핵심으로서 활약.
- 특히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에서 베나윤을 농락하고 기록한 결승골은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골.
-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설바우두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는데 어원을 생각하면 얼마나 큰 기대를 받았는지 알 수 있고, 심지어 EPL 07/08시즌 오프닝에도 출연했었을 정도로 활약상이 컸음.
- 그러나 본인은 윙어가 아닌 최전방 공격수를 소화하고 싶다는 고집으로 인해 스티브 코펠 감독과 갈등을 빚기도 했고 이후 후반기부터 점점 부진의 늪에 빠져 결국 4골 4어시스트로 시즌을 마감, 다음 시즌을 앞두고 풀럼의 오른쪽 수비수인 리암 로세니어와 트레이드로 풀럼 FC로 팀을 옮김.
풀럼 FC
- 풀럼의 스폰서이던 LG의 영향도 있어 보이나 등번호로 7번을 달기도 했던 만큼 팀 내 대우나 입지는 괜찮아 보였으나 설기현 영입을 추진한 로리 산체스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 로이 호지슨이 부임하면서 입지가 크게 좁아짐.
- 08~09시즌을 앞둔 한국 투어에서 부산, 울산전에서 어느정도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며, 출전의 기대감을 보여줬고, 2008-09 시즌 개막전 헐 시티 원정에서 선제골을 기록한 것이 풀럼에서의 유일한 리그 득점.
알 힐랄 FC (임대)
- 결국 사우디 알 힐랄로 임대 이적되어 뛰다 풀럼과 계약 해지한 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
포항 스틸러스
- K리그로 복귀하며 축구팬들에게 회자될만한 먹튀 전설을 쓰기 시작하며, 그 첫 단추가 포항 스틸러스 입단. 포항의 1년 연봉 12억을 완전히 먹고 튄 것 정도까진 아닌데 중요한 부분에서 말아먹는 바람에 평가가 매우 안 좋아짐.
- 포항 입단 직후 첫 훈련에서 부상을 당해 3월, 4월, 5월 경기에 나온다, 안 나온다 하더니 결국 반 시즌을 날림.
-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포항이 8강 2차전 조브아한과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허무하게 날려 팀의 무승부에 일조 하면서 제대로 욕을 먹고 삐걱대기 시작.
- 재계약 하지 않은 배경으로는 새 감독 부임 후 첫 동계훈련부터 스쿼드에서 제외된 부분이 크게 작용한 것. 전반 시즌은 생각보다 깊었던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못나갔으나 후반에는 기록에서 보여주듯이 16경기에서 7골 3어시스트를 할 정도로 기량을 회복했으나 새 감독 부임 이후 사실상 그 다음 시즌이 출전이 불분명해져서 연봉을 대폭 낮춰서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팀으로 이적한 것으로 보임.
울산 현대
- 이적하면서도 좋은 소리를 못 들은 것이 본인은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서 뛰고 싶은데 팀에선 자꾸 윙 포워드를 강요한다고... 하지만 본래 볼 터치가 둔탁하고 골 결정력이 떨어지는 대신 돌파력과 크로스가 역대급인 선수라 포항 입장에선 당연히 윙 포워드로 쓰고 싶을 수 밖에 없었음. 최전방 공격수 자리를 찾아간 울산에서도 윙 포워드가 제 포지션이라 보고 측면으로 기용.
- K리그/2011년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서 친정팀 포항을 상대로 페널티킥을 얻어내고 성공. 이것이 그대로 결승골이 되면서 울산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진출시킴과 동시에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따냄. 반면에 포항은 K리그의 챔스티켓이 3.5장으로 줄면서 플레이오프를 노려야 하는 상황.
- 2011시즌 성적은 41경기 7득점 10도움.
인천 유나이티드 FC
- 2012 시즌을 앞두고는 연봉 문제로 울산 현대와 다투는가 싶더니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 허정무 감독과의 인연이 큰 이적을 결심하는데 역할을 한듯. 연봉을 울산에서 받던 수준의 절반으로 줄이고, 인천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한 후 지도자 준비를 할 것이라 밝힘.
- 2012 시즌에는 여러 경기에서 활약하며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2013 시즌 인천은 스플릿 A 그룹에 드는 저력을 발휘했지만 설기현 개인 활약은 평범, 2014 시즌은 부상으로 7경기만 뛰고 시즌 종료.
- 2015년 3월 3일 K리그 클래식 개막을 4일 앞둔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 성균관대학교 감독으로 부임. 전지훈련도 동참하고 심지어 이번에는 시즌 새 유니폼 모델까지 맡았기에 부상으로 경기 얼마 안 뛰고 연봉만 받아먹었던 2014년의 모습을 지우고 그래도 올해는 뭔가 기대에 부응해주지 않을까 했던 팬들의 당혹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 거기다 인천에는 통역이 없어서 영어를 잘하는 설기현이 외국인 선수와 소통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포항 팬들과 울산 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천 팬들 역시 설기현을 크게 비난하고 있다. 설기현에 대한 이미지가 "시즌 개막 직전마다 일을 저지르는 선수"로 낙인찍히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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