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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건사고/우리나라 해결된 사건 사고

인천 선학동 먹자골목 싸움 보복 살인사건

by hwani’s 2023. 12. 4.

목차

    인천 선학동 먹자골목 싸움 보복 살인사건

    목차
    1. 사건개요
    2. 사건내용
    3. 사건이후

    사건개요

    2005년 11월 5일,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의 편의점 앞 노상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은 초기에는 주로 '선학동 먹자골목 살인사건'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술집과 식당 등이 밀집한 골목가, 일명 '먹자골목'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천 보복 살인사건"이란 이름은 2007년 특명 공개수배 방영 당시의 제목으로, "마지막 24시간"이라는 부제와 함께 방영되었습니다.

    사건내용

    2005년 11월 5일 새벽, 당시 무직이었던 김씨(당시 29세)는 친구 B씨와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러 놀다가 노래방 도우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바꿔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씨 등은 노래방 도우미를 공급하는 '보도방'을 운영하던 김○균(당시 31세)과 시비가 붙었고, 싸움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김○균의 후배 최○영과 김○균의 또 다른 후배 C씨가 싸움에 끼어들어, 2 대 3으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김씨는 싸움에서 밀리자 근처 횟집에서 가져온 회칼로 김○균을 위협하며 "죽여버린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싸움이 끝난 후 김○균은 화가 극에 달해 인천광역시 내의 어떤 거리를 배회하다가 새벽 5시 30분경, 때마침 그 거리에서 평소 친분이 있는 고향 후배 박병섭(당시 32세)을 만났습니다. 이때 박병섭은 김○균의 말에 깜짝 놀란 후, "사람을 좀 모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후 박병섭은 자신이 김○균과 거리에서 만난 후 김○균의 자초지종을 듣기까지 약 1시간 동안 어떤 일이 발생한 건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최○영과 김○현, 김○윤에게 연락했습니다. 김○윤은 또 다른 후배 박○홍, 김○곤, 조○철에게 연락해 김○균과 박병섭이 거리에서 마주친 지 4시간 후인 아침 9시경 인천 남구(현 미추홀구)의 한 모텔에 8명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박병섭과 김○균이 사전에 모의한 대로 김○현에게 신포동 사람들과의 싸움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였고, 그에 따라 김○현은 잡화점에서 회칼, 마스크, 목장갑을 준비하였습니다.


    김○균과 박병섭은 김씨와 B씨, 그리고 그들의 선배인 D씨를 오락실 앞으로 불러내어 사과를 요구하였고, 후배인 김씨를 때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D씨가 이를 거부하자, 김○균은 차에서 대기하던 6명에게 "놈들이 나오면 쫓아가 칼 한두방 놓아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 후 박병섭은 김○현 등 6명에게 앞서 준비해둔 회칼과 마스크, 목장갑을 나눠주었고, 그들은 차량에 나눠 타서 김씨 일행을 미행하였습니다. 김씨와 B씨가 택시에서 내려 선학동의 한 편의점 앞에 도착하자, 최○영은 차에서 내려 B씨를 찌르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이후 최○영은 김씨의 멱살을 잡고 "빨리 연장 가져와!"라며 소리치고, 박○홍에게 회칼을 건네받은 최○영과 김○현, 김○윤 3명이 김씨에게 달려들어 다리와 어깨 등을 총 14회 찔렀습니다.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인 6일 아침에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도중 과다출혈로 숨졌습니다.

    사건이후

    사건이 발생한 지 15일 후인 2005년 11월 20일 아침에 경찰은 박병섭과 김○균의 범행을 도운 공범 6명 중 3명을 긴급체포하였습니다. 체포된 공범 중 한 명은 "박병섭 형님이 김씨에게 사과를 요구했는데 거부해서 우리에게 회칼을 감추고 김씨에게 다가가 찌르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공범 중 2명이 서울의 한 술집에서 자수하자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술집 종업원이 듣고 신고하여 이들 역시 검거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0개월 후인 2006년 9월에 주범인 김○균도 검거되었습니다.

     

    박병섭은 2007년 상반기 중요지명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최초로 고유번호 1번으로 등록되었고, 이후 2008년 상반기에는 고유번호 3번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그는 사건 발생 이후 약 2년 반 동안 잠적하였습니다. 그러나 2007년 7월 26일, 특명 공개수배 방송을 통해 그의 정보가 공개되었고, 이후 2008년 5월 27일에는 특명 공개수배에서 방송된 내용을 기억하고 있던 시청자의 제보로 인해 검거되었습니다.

    특명 공개수배 방영 당시 이창진 아나운서의 말에 따르면, 살인에 가담한 후배들은 징역 6년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고, 주범인 김○균은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박병섭 자신은 같은 해 10월에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 김○균: 1심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 최○영: 1심에서 징역 14년이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 박병섭: 1심에서 징역 8년이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으로 늘어났습니다.
    • 김○현: 1심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 김○윤: 1심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 박○홍: 1심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 김○곤: 1심에서 징역 10년이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7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 조○철: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4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현재 이들 모두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