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 윤일병 사건
목차
1. 사건 개요
2. 사건 상세
사건 개요
2014년 4월 7일, 대한민국 육군 제28보병사단 포병여단 977포병대대 의무대에서 선임 병사들이 후임 병사를 집단 구타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 사건. 해당 사건의 피해자 윤승주 일병의 성을 따 윤 일병 사건이라고도 부른다.
게다가 조사 과정에서 이들이 그 전부터 행했던 각종 가혹행위들이 하나하나 밝혀졌는데, 그 수준이 인간말종 종자들이나 할 짓들이라 온 국민을 분개하게 만들 정도였고, 아울러 대한민국 육군 역대 사건 사고들 중 최악의 살인 사건으로도 꼽힌다.
사건 상세
제22보병사단에서 집단괴롭힘에 앙심을 품은 병장이 총기를 난사하여 다수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임병장 사건과 더불어 2010년대 대한민국을 뒤흔든 충격적인 군 내 사건으로, 두 사건으로 인해 군대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추락.
윤승주 일병(사망 당시 21세, 1993년생)이 제977포병대대 의무대 생활관에서 선임 병사들과 만두 등 냉동식품을 나눠 먹던 중, 의무대에 파견된 앰뷸런스 운전병인 이찬희 병장(당시 27세, 1988년생)을 포함한 선임병 4명에게 정수리와 가슴 등을 수십차례 구타 당하고 쓰러진 뒤, 쓰러진 상태에서 추가적으로 구타와 폭행을 당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
윤 일병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짐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은 생명을 구하는 일엔 아랑곳 없이 폭행을 멈추지 않는 비정함을 보였다. 결국 구타로 인해 뇌사 상태에 빠진 윤 일병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결국 다음 날 사망하고 말았다.
처음에 수사 가닥이 잡혔을 때에는 단순히 냉동식품 취식 중에 일어난 우발적 폭력으로 인한 폭행치사 사건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여러 증언들이 더해지고 정밀한 수사가 심도 있게 진행되면서 해당 사건이 무려 4개월에 걸쳐서 지속된 폭력 사건의 참담한 말미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국적으로 국민들에게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폭행을 당해서 다리를 절뚝거림에도 그걸 꾀병이라고 하면서 도리어 더 심하게 폭행하고, 성기에 안티푸라민을 발라 성적인 수치심을 주기도 했으며, 치약 한 통 먹이기, 잠을 안 재우고 기마자세 서기 등의 가혹행위를 일삼았다고 한다. 이 내용이 7월 30일 KBS 9시 뉴스에서 단독 보도되고 31일 군 인권 센터의 발표로 드러나, 사건이 다시 한 번 이슈가 되면서 31일 23시 기준으로 네이버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황당한 것은 타 부대 입실 환자들이 다 보고 있는 앞에서도 가혹행위가 벌어졌다는 것. 윤 일병 사망 직후 무마를 위해서 가해자들은 입실 환자들에게 "당신들은 자고 있었던 거고 아무것도 못 본 거다."라고 말을 하는 협박을 가했다고 한다. 특히 가해 주도자 이찬희 병장은 자신의 아버지가 유명한 조폭이라면서 가혹행위를 가하는 후임들에게 "만약 이 일을 고발하면 아버지한테 말해서 가족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며 협박을 했다고 한다. 주요 피해자 윤 일병에게는 "니 애비 사업을 망하게 하고, 니 에미는 섬에 팔아버리겠다."는 협박성 멘트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이 조폭 집안이란 걸 과시해서 부대를 장악하는 데 활용했으면서, 막상 후임들이 조폭 얘기를 꺼내면 또 미친 듯이 구타를 일삼았다고 한다.
정밀수사 결과, 새롭게 밝혀진 사실에서 목격자 김 일병(당시 의무대 환자)에 따르면 피고인 및 주범인 이찬희 병장이 평소에 후임병들에게 "심부름센터 같은 데에 돈 몇 억 주고 사람 몰래 죽이는 것은 간단하다. 아버지가 이전에 영남 근방에서 굉장히 잘 나가던 조폭이고 자기(아버지) 밑에 대신 살인죄로 들어간 부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찬희 병장과 이상문 상병은 평소에도 피해자 윤 일병에게 "너 계속 이러다가 죽는다. 네가 제대로 해야 살잖아."라고 여러 차례 협박을 했다고 한다. 또 가해자들은 평소 "우리는 영창 갈 생각하고 널 패는 거다"라는 말도 했다고 증언. 윤 일병의 얼굴이 구타로 부어있었는데, 가족이 면회를 오거나 종교 활동을 나가면 자신들의 폭행 사실이 발각될까봐 종교 활동을 못 나가게 하고, 윤 일병을 협박하여 가족 면회를 막기도 했다. 거기에 이찬희 병장은 평소 기독교 자체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개신교 신자인 윤 일병이 교회에 가는 것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윤 일병의 역할까지도 가해자들은 바꿔치기를 했다. 사실 윤 일병의 역할은 5분대기조였다. 의무대에는 5분대기조라는 이름으로 동일한 연대하의 대대 행정실에 상주하면서 치료를 하는 역할이 있다. 5분대기조는 다른 부대에 나가있어야 하기에 힘들어서 보통 가장 계급이 낮은 이가 담당하게 된다. 그런데 이찬희 병장은 윤 일병을 보내지 않고 이 모 일병을 보내고 윤 일병에게 응급 대기를 시켜서 식사를 못하게 했다. 주범 이찬희 병장은 3개 대대에 5분대기조를 보내야 할 때도 하선우 병장과 이상문 상병을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윤 일병은 보내지 않았다. 가장 말단 계급인 윤 일병이 해야 할 일인데도 왜 그랬을까? 식사를 못하게 하는 등 계속 괴롭히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윤 일병이 폭행당하는 사실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가 주도한 극악무도한 폭행은, 사실이 드러날 경우 아무리 해당 부대와 간부가 구타에 관대하더라도 넘어가지 못했을 수위였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간부인 유경수 하사(사건 당시 23세, 1991년생)는 비록 윤 일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폭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나, 사병들의 폭행을 방관 및 묵인하고 두둔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폭행(사망 사건 이전)에 가담한 적이 있다고까지 한다. 거기에 이찬희 병장, 하선우 병장과 함께 휴가 기간에 성매매를 하기도 했으며, 그 이후로 이찬희 병장과 의형제 같은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나이와 계급을 보면 알겠지만, 전역 직전의 말년병장이 하사에게 형님이라고 하는 흔한 게 아닌 나이 어린 하사가 병장에게 알아서 긴 것이다. 계급체계부터 완전히 붕괴된 막장.
폭행은 자대 배치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시작되었다. 과거 1980~90년대 구타 및 가혹행위가 만연하던 시절에도 전입 후 100일이 되지 않은 신병한테는 손을 대지 않는 나름대로의 규칙과 면회나 전화 같은 건 막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배려가 있었는데, 이 사건은 21세기에 일어난 일임에도 이런 것조차도 없었다. 이 사건의 비참함이 배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윤 일병의 자대 배치 이후 사망까지의 폭행 일지가 소개된 기사, "나는 고발한다". 이 정도 악행이면 인간 쓰레기 확정이다. 전시 포로나 범죄자에게도 해서는 안 될 끔찍한 행동을 평시 군부대에서 아군에게 벌였으니... 4월에 터진 개막장 사건인데도, 더 늦게 일어난 22사단 사건이 당장 눈에 보이고 숨길 수도 없는 사건이라서 먼저 드러난 듯 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28사단은 22사단과 함께 육군의 대표급 병영부조리 부대로 낙인이 찍힌 상태.
이후 윤 일병은 순직 처리되었고, 5월 8일 1계급이 추서되었으며, 윤 일병의 유해는 서울 현충원 충혼당에 봉안되었다. 생전 계급을 따라 "윤 일병 사건"으로 보통 알려져 있으나, 국방부 장관 한민구의 기자회견 이후에는 추서된 계급을 따서 "윤 상병 사건"으로 표기하는 언론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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